청소년의 소셜미디어(SNS) 이용 부작용이 커지면서 전 세계 각국이 이용 제한 등 규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논의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청소년 SNS 규제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관련 입법은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해 콘텐츠에 대한 자체 규제 기준이 모호한 만큼, 정부가 나서 관련 논의와 제도 마련을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지난해 호주 시작으로 전 세계 청소년 SNS 금지
23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해외 주요국은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제한하는 법안을 도입하고 있다. 프랑스 의회는 지난 21일(현지시각) 15세 미만 청소년의 SNS 이용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법안은 틱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X, 로블록스, 왓츠앱 등 주요 SNS에 적용되며, 오는 9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플랫폼 기업은 여권이나 은행카드 등 위·변조가 어려운 수단으로 이용자의 연령을 확인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프랑스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아르콤의 제재를 받는다.
이 법안을 강하게 추진해 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표결 직후 "아이들의 두뇌와 감정은 상품이 아니며, 어떤 플랫폼이나 알고리즘에도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안 르 에낭프 프랑스 인공지능(AI) 담당 장관도 상원에서 "프랑스는 유럽 최초로 '디지털 성년'을 도입하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이번 결정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청소년 SNS 규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호주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의 SNS 이용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다. 플랫폼 기업에 16세 미만 이용자의 계정 보유를 막을 의무를 부과했으며, 시행 직후 470만개가 넘는 계정이 차단·삭제됐다. 아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16세 미만의 SNS 계정 생성을 금지했다. 영국·스페인·그리스 등 유럽 10여개국과 캐나다, 아랍에미리트(UAE)도 최소 이용 연령 제한과 연령 확인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각국이 규제 강화에 나선 배경에는 청소년의 SNS 이용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다. 호주 머독어린이연구소(MCRI)가 청소년 1239명을 조사한 결과, 하루 2시간 이상 SNS를 이용한 집단은 1시간 미만 이용한 집단보다 우울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전문가들은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SNS의 자극적·편향적 콘텐츠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정서 발달과 현실 인식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국내에서 SNS는 학교폭력과 마약 범죄 등에 악용되는 주요 통로로 꼽힌다.
◇ "사회적 논의 필요하다"… 국내선 법안도 정책도 '지지부진'
전 세계적으로 SNS 규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국내에는 관련 논의가 더디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청소년 SNS 규제 관련 법안 7건이 계류 중이다. 주요 내용은 청소년에게 노출되는 SNS 추천 알고리즘을 제한하거나, 부모 동의를 전제로 알고리즘 추천을 허용하는 방안이다. 만 14세 이하의 SNS 가입을 막거나 청소년의 일일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러나 7개 법안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정부의 규제 방안도 아직 단계적 검토 수준이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은 이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14세 미만은 SNS 가입을 제한하고, 14세 이상 19세 이하 청소년에게 과몰입을 유도하는 중독성 디자인과 추천 알고리즘 노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과거 게임 셧다운제 경험을 고려해 섣불리 접근하기보다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맞춤형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사회적 논의를 우선 하겠다고 밝혀, 실제 제도 도입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관련 논의가 지연되는 사이 국내에서는 청소년의 SNS 이용을 직접 제한하기보다 플랫폼별 자율 안전장치에 의존하는 모습이다. 메타코리아는 올해 인스타그램 청소년 계정을 도입해 18세 미만 이용자의 일부 기능과 이용 환경을 제한했다. 틱톡도 18세 미만 이용자의 일일 이용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하는 보호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유해 콘텐츠의 기준이 모호하고 플랫폼의 자율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관련 논의와 제도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 게임 셧다운제와 달리 청소년 SNS 규제는 이미 전 세계적인 정책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국내도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크다"며 "플랫폼의 자율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중심이 돼 관련 규제와 제도 마련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