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로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려면 AI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사와 직접 전력 구매 계약(PPA)을 맺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천개가 24시간 돌아가는 AI 데이터센터는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하므로,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2030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6.2GW(기가와트)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가 작년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 3.3GW, 2038년 6.2GW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으나, 급증하는 AI 수요에 전력 소비량이 예상을 크게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초안에는 증가하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LNG 직거래'를 허용하는 방안이 담겨 있었다. 직접 PPA는 기업이 한국전력을 통해 전기를 사지 않고 발전 사업자와 직접 계약해 전기를 구매하는 제도인데, 현행법상 직접 PPA 대상은 재생에너지로 한정돼 있다.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기상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어려워 출력 조절이 쉬운 LNG가 필요하다고 요구해 왔다.
이에 특별법 초안은 AI 데이터센터 사업자가 LNG 등 다른 에너지원을 직접 PPA할 수 있도록 했으나, 기후에너지환경부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과기정통부는 이 특례가 필요하다고 봤지만, 조항을 삭제하더라도 법을 통과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빠른 전력 수요 급증에 LNG 직접 PPA가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울산시는 직접 PPA 대상에 LNG를 포함하도록 정부 및 국회에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 내에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내에서 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사업자에게 40MW(메가와트)의 발전설비 용량 제한을 없애고 대용량 직접 PPA를 가능케 하는 분산 에너지 특별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현행법상 발전 사업자는 특화지역에서 전기를 직접 공급할 수 있지만, 설비용량이 40MW 이하로 제한돼 수백MW를 쓰는 대형 데이터센터 수요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최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데이터센터 전력을 위해 LNG 전력 공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배 부총리는 "AI 데이터센터를 2029년까지 8.4GW(기가와트), 2035년까지 15GW 규모로 짓기 위해선 전력을 갖추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원전도 확대하고, 재생에너지도 대폭 확대하고, 아직 기후에너지부와 합의는 안 됐지만 개인적으로는 LNG까지 열어놓고 '데이터센터 전용 요금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AI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직접 조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AI 기업 xAI는 전력망 연결 대기를 우회하기 위해 천연가스 발전 터빈을 직접 설치해 가동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아예 원전을 통째로 확보했다. 가동이 멈췄던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를 재가동시켜, 2028년부터 20년간 여기서 생산된 전력을 독점 구매하기로 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4시간 일정하게 공급되지 않는 재생에너지만 직접 PPA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한 건 기술적으로 맞지 않는 조치"라면서 "구글 등 빅테크는 소형모듈원자로(SMR) 발전소와 직접 PPA를 맺고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브링 유어 온 제너레이션(Bring Your Own Generation·BYOG)' 정책을 통해 기업이 데이터센터를 지을 때 자체 발전 시설을 직접 짓거나 전력을 자체 확보하도록 유도하는데, 한국은 발전원을 가져와 자유롭게 자급하는 구조가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