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로고./로이터연합뉴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글로벌 PC 업계의 주문이 몰리면서 내년 말 출하분까지 예약된 것으로 전해졌다. 메모리 3사(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인공지능(AI)용 제품에 생산 능력을 우선 배정해 PC·스마트폰용 D램이 품귀를 빚자 CXMT가 대안 공급처로 떠오른 것이다.

21일 반도체 업계와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글로벌 PC 업계의 주문 증가로 CXMT의 2027년 말까지 D램 출하분에 대한 예약 주문이 모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델·HP·레노버 등이 물량을 우선 배정받을 것으로 거론된다. 애플 맥 등 PC 제품에도 CXMT D램이 일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후순위로 밀린 중소 업체는 주문을 넣기 어려울 정도로 판매량이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이 중국 판매용 스마트폰에 CXMT 메모리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 사실이 알려진 뒤 PC 제조사의 주문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이 미국 정부에 관련 계획을 설명하면서 규제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고, 품질 기준이 엄격한 애플의 제품 시험도 CXMT의 기술 신뢰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CXMT가 당장 첨단 공정이나 HBM에서 메모리 3사의 아성을 흔들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만 이번 메모리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기)에 글로벌 고객과 현금, 양산 경험을 확보하면 다음 하락 국면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범용 D램 점유율과 수익성을 압박할 경쟁자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 "애플의 스마트폰 도입 검토가 PC용 주문 늘린 계기"

애플의 스마트폰용 메모리 도입 검토가 CXMT의 품질과 공급 능력에 대한 신뢰를 높이면서 델·HP·레노버 등 PC 업체의 주문 증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 IT매체 디지타임스는 "PC 브랜드의 CXMT 메모리 주문 경쟁이 촉발된 것은 애플의 제품 시험과 미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 소식이 시장에 '청신호'로 받아들여진 결과"라며 "애플이 먼저 중국산 메모리의 사용 가능성을 타진하자 PC 업체들도 CXMT를 실제 조달할 수 있는 공급사로 판단해 선구매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플은 CXMT와 중국 낸드플래시 업체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의 제품을 중국 판매 기기에 탑재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미 정부 관계자들에게 관련 계획을 설명하는 등 로비 활동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HP는 공급처 다변화를 위해 CXMT 제품 인증에 착수했고, 델도 메모리 가격 상승에 대비해 CXMT D램을 시험했다. 에이서·에이수스도 도입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메인보드 업체 MSI는 CXMT 칩을 사용한 더블데이터레이트5(DDR5) 모듈이 인텔 Z890 메인보드에서 초당 8000메가트랜스퍼(8000MT/s) 이상으로 안정적으로 작동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이 아니라 DDR4·DDR5 같은 범용 메모리는 일반 소비자가 세대별 성능 차이를 크게 체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지금 PC 업체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급 물량과 가격이어서 CXMT 제품도 충분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공급 부족에 가격 급등… CXMT 점유율 3%→8%

PC 업체들이 CXMT 물량 선점에 나선 배경으로는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과 원가 상승이 꼽힌다.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세계 데스크톱·노트북 출하량은 6567만대로 전년 동기보다 3.6% 줄었다. 레노버·HP·델의 출하량은 각각 2.1%, 9%, 4.9% 감소했다.

반면 애플의 PC 출하량은 725만7000대로 15.9% 증가했고, 시장 점유율도 9.2%에서 11.1%로 올랐다. 지난 3월 미국에서 599달러에 출시한 보급형 노트북 '맥북 네오'가 가격에 민감한 수요를 흡수한 결과다. 그러나 애플도 출시 약 3개월 만에 미국 판매 가격을 100달러 인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장기계약으로 부품을 조달하는 애플마저 가격을 인상했다는 점은 PC 업체의 원가 압박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라고 했다.

메모리 3사가 수익성이 높은 HBM과 고용량 서버용 D램 생산을 늘리면서 DDR과 저전력 더블데이터레이트(LPDDR) 계열의 공급은 줄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범용 D램 계약가격은 전 분기보다 58~63% 올랐다.

D램 시장 점유율 추이./카운터포인트리서치

CXMT가 보조 공급처로 급부상한 배경이다. CXMT도 범용 D램 품귀에 맞춰 작년 DDR 제품 평균판매가격을 전년보다 61% 올렸지만, 메모리 3사보다는 여전히 낮은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 세미애널리시스는 올해 1분기 CXMT의 평균판매가격이 메모리 3사보다 5~10% 낮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CXMT는 품질 차이가 크지 않은 범용 D램 제품을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업체로 주목받으면서 시장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CXMT의 세계 D램 매출 점유율은 작년 1분기 3%에서 1년 만에 8%로 높아졌다.

◇ 기술 격차는 여전… "다음 하락기에 위협될 것"

CXMT는 16나노미터급 공정을 중심으로 DDR5를 생산한다. 반면 메모리 3사는 1b나노급을 양산하고 1c나노급으로 전환하고 있다. 공정 세대가 뒤질수록 웨이퍼 한 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비트 수와 전력 효율, 원가 경쟁력에서 불리하다.

CXMT가 HBM3(4세대 HBM) 개발도 추진하고 있지만 적층 공정과 수율 안정화가 어려워 실적 기여는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기술 격차 탓에 AI 시장보다는 PC·스마트폰용 D램에 집중하는 구조다. 이들 제품은 HBM이나 고용량 서버용 D램보다 단가와 수익성이 낮아 출하량을 늘리더라도 메모리 3사와 같은 규모의 매출과 이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다음 하락 국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XMT는 중국 정부 지원으로 적자 기간을 버틴 뒤 작년 첫 연간 흑자를 냈고, 기업공개(IPO)를 통해 최대 666억위안(약 14조6000억원)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바탕으로 '치킨게임'을 벌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범용 D램 수익성을 직접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주문 증가가 실제 공급 확대로 이어지려면 미국의 규제 문턱을 넘어야 한다.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 소속 양당 의원들은 최근 미국 기업의 CXMT·YMTC 제품 구매 제한 검토를 상무부에 요구했다.

한 PC 제조사 임원은 "CXMT가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면 단기적인 보조 공급처를 넘어 기존 메모리 업체의 구매 물량까지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