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D램 생산 공장./각 사

삼성전자·마이크론·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이 최근 역대급 분기 실적을 잇달아 발표했다.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에 따른 반도체 수퍼사이클(초호황기)이 전례 없는 규모로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시장에서는 '반도체 정점론'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 차질 ▲메모리값 상승에 따른 PC·스마트폰 수요 위축 ▲주요 메모리 기업의 동시 증설이 현재의 공급 부족을 과잉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호황이 최소 2년 안팎 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빅테크의 설비투자(CapEx)와 고대역폭메모리(HBM)·서버용 D램 수요가 늘고 있고, 신규 팹 물량이 시장에 풀리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2022~2023년 반도체 한파를 만든 현상들에 대비해 수요·재고·공급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이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는 올 2분기(4~6월)에 매출 1조2704억대만달러(약 58조6000억원), 영업이익 7666억대만달러(약 35조40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각각 36.0%, 65.4%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49.6%에서 60.3%로 상승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 ASML은 올해 연간 최대 매출 전망치를 기존 400억유로에서 450억유로(약 76조5000억원)로 높였다.

마이크론은 2026 회계연도 3분기(3~5월)에 매출 414억5600만달러(약 61조4710억원), 영업이익 333억1800만달러(약 49조4040억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80.4%에 달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와 SK하이닉스의 올 2분기 영업이익률도 비슷한 수준으로 분석했다.

◇ 역대급 실적에도 정점론… 수급 뒤집을 3대 변수

주요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이 전례 없는 수준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러 변수가 맞물리면 호황이 시장의 기대보다 빨리 끝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는 '메모리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올해가 반도체 시장 성장 속도의 정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정서희

① 데이터센터 투자 차질… 전력·비용이 발목

데이터센터 건설 지연이나 취소는 AI 메모리 수요를 직접 흔들 수 있는 요인이다. HBM·서버용 D램·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주문은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데이터센터 운영사)의 시설 건설과 서버 설치 일정에 맞춰 이뤄진다. 전력 확보와 인허가가 늦어지면 반도체 발주도 밀린다.

최근 데이터센터 시장에서는 정부 규제가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뉴욕주(州)는 전력 사용량 50메가와트(㎿) 이상인 신규 대형 데이터센터의 재량적 인허가를 1년간 중단했다. 전력망 증설 비용과 전기요금, 용수 부담 등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신규 건설과 기존 시설 확장을 2030년까지 제한하고 있다. 옴디아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장기적으로 연평균 12~20% 늘지만 발전량 증가율은 1~5%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브루스 베이트먼 옴디아 대만 반도체 수석 애널리스트는 "미국 주요 데이터센터 사업 가운데 전력과 용수 문제로 지연되거나 취소될 위험이 있는 규모가 9~12기가와트(GW)에 달한다"고 했다.

사업비도 오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엔비디아의 AI 가속기 '루빈 울트라' 기반 1GW 데이터센터 구축비 추정치를 43억달러(약 6조3760억원)에서 50억달러(약 7조4140억원)로 16% 높였다. 아마존 '트레이니엄3' 기반 시설도 15억달러(약 2조2240억원)에서 21억달러(약 3조1140억원)로 36% 상향했다. 업계 관계자는 "AI 서비스 수익화가 투자비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 시설 착공과 반도체 주문이 늦어질 수 있다"고 했다.

② 메모리값 급등… PC·스마트폰 수요 위축

메모리 업체들은 HBM·서버용 D램 등 고수익 제품에 생산 능력을 우선 배정하면서 범용 D램·낸드플래시 공급을 줄였다. 부품 원가가 완제품 가격에 반영되자 가격에 민감한 보급형 시장부터 출하량이 감소하고 있다.

옴디아는 올해 미국 PC 출하량이 전년보다 14.4% 줄 것으로 내다봤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분기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도 전년 동기보다 11% 줄어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2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범용 메모리 고객사들이 재고 조정을 본격화하면 D램과 낸드 주문이 감소해 가격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서버용 제품이 호조를 이어가더라도 PC·스마트폰 시장이 신규 범용 물량을 흡수하지 못하면 전체 재고 부담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③ 메모리 3사·CXMT 증설… 2028년 공급 부담

메모리 3사(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는 공급 부족에 대응해 신규 팹과 기존 생산라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메모리 3사는 향후 가격 하락 가능성을 알고도 투자를 늦추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작년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7.7%로 4위에 오른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생산능력과 공정 기술을 고도화하며 이들 기업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고객이 요구하는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면 장기공급계약과 시장점유율을 내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첫 팹의 가동 목표를 기존 2030~2031년에서 2029년으로 앞당겼다. SK하이닉스는 청주 M15X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용인 첫 팹을 2027년 2월까지 조기 완공할 계획이다. 마이크론은 2026 회계연도 설비투자를 약 270억달러(약 40조360억원)로 확대했다. 일부 신규 시설의 웨이퍼 투입이 본격화하는 2027년 하반기~2028년에 수요 증가율이 낮아지면 공급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변수 3개 맞물렸던 2023년… "이번에는 다르다" 의견도

2022~2023년 반도체 시장 악화는 현재 고개를 드는 세 가지 변수가 겹친 결과였다. PC·스마트폰 기업의 재고 조정과 데이터센터 투자 축소가 이어졌지만, 메모리 업체의 생산량은 즉시 감소하지 않아 '반도체 한파'가 닥쳤다.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의 2023년 연간 영업손실은 14조8700억원이었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도 각각 7조7300억원, 57억4500만달러(약 8조519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한편 이번 호황 사이클은 과거와 다르다는 평가도 많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올해 서버용 D램과 HBM이 전체 D램 출하량의 57%를 차지할 것으로 분석했다. 과거에는 PC와 스마트폰 교체 수요가 업황을 크게 좌우했지만, 현재는 AI 서버 수요가 물량을 흡수해 가격 급락을 방어할 수 있는 구조다.

그래픽=정서희

주요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도 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관련 투자가 올해 7790억달러(약 1155조1010억원)에서 2028년 1조3960억달러(약 2069조9880억원)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노무라는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메모리 수요가 2025년 1070억달러(약 158조6600억원)에서 2030년 1조3980억달러(약 2072조9540억원)로 늘 것으로 봤다.

브루스 베이트먼 애널리스트는 "신규 팹이 가동되기 전에는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렵지만, 현재 주문이 실제 최종 수요로 이어지는지는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