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 테크 콘퍼런스(K-TEC 2026) 참석차 지난 15일 방한한 알란 라가스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스마트산업부문 로보틱스세그먼트 전략 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 디렉터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ST

"휴머노이드 로봇이 본격적으로 확산하려면 가격이 스마트폰 수준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앞으로 5년 안팎에 2만~3만달러(약 3000만~4500만원)까지 가격이 낮아지면 산업·제조 현장을 중심으로 도입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봅니다. ST는 개별 반도체 공급에 그치지 않고, 센서·마이크로컨트롤러(MCU)·모터 제어·전력반도체를 시스템 단위로 묶어 고객사의 개발 기간과 원가를 낮추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알란 라가스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T) 스마트산업부문 로보틱스세그먼트 전략 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 디렉터는 연례 테크 콘퍼런스(K-TEC 2026) 참석차 지난 15일 방한해 조선비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피지컬 인공지능(AI)이 올해 글로벌 테크 업계의 주요 화두로 부상한 것은 여러 기업이 상용화에 근접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잇달아 선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휴머노이드가 대중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로봇을 움직이는 AI 소프트웨어의 성숙도, 학습 데이터 부족, 배터리 지속 시간, 정밀한 손·관절 제어, 안전 규제, 사이버 보안, 공급망 문제 등을 풀어야 한다.

ST는 자동차·산업용 기기·데이터센터·가전 등 다양한 전자 애플리케이션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다. 지난해 매출은 118억달러(약 17조7000억원)를 기록했고, 전 세계 20만 곳 이상의 고객사와 협력하고 있다. 로봇 시장에서는 휴머노이드의 중앙 두뇌 역할을 하는 AI 칩을 직접 겨냥하기보다, 로봇이 실제 세계에서 보고 움직이고 제어하는 데 필요한 핵심 주변 반도체를 시스템 단위로 묶어 제공하는 전략을 세웠다.

◇ 휴머노이드 가격, 5년 후 2만~3만달러대 전망

라가스카 디렉터는 휴머노이드 확산을 저해하는 요인 중 가장 큰 문제로 가격을 꼽았다. 그는 "휴머노이드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도입 대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며 "앞으로 2~3년은 시장이 검증되는 시기이고, 그 이후 더 높은 수준의 채택이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5년 정도 지나면 휴머노이드 가격이 2만~3만달러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본다"며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여전히 비싸지만, 지금보다 가격이 크게 낮아지면 시장 확산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스마트폰 수준의 가격을 언제 형성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정확한 예측은 어렵지만, 흐름을 보면 그리 먼 미래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2024년 전 세계에 도입된 휴머노이드는 약 2400대 수준이었고, 작년에는 1만8000~2만대 수준으로 증가했다"며 "올해는 이미 5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휴머노이드가 100만대를 넘어서는 수준에 도달하면 양산 규모가 가능해지는 시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생산량 증가와 가격 하락이 맞물리면 시장 확산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연례 테크 콘퍼런스(K-TEC 2026) 참석차 지난 15일 방한한 알란 라가스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스마트산업부문 로보틱스세그먼트 전략 프로그램 애플리케이션 디렉터가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ST

◇ 개별 칩 아닌 시스템 통합… "산업·제조 시장부터 열릴 것"

라가스카 디렉터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장 먼저 자리 잡을 시장으로 산업·제조 현장을 꼽았다. 공장과 물류센터는 동선과 작업 환경이 비교적 정형화돼 있어, 가정이나 일반 서비스 공간보다 로봇을 적용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제조·물류 환경은 상대적으로 정제돼 있지만, 가정처럼 집마다 구조가 다른 환경에 휴머노이드가 들어가려면 주변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능력과 더 높은 수준의 AI가 필요하다"며 "아직 동작 속도와 정교함, 작동 시간에서 한계가 뚜렷하다"고 했다.

라가스카 디렉터는 ST의 반도체 기술로 휴머노이드 고객사의 기술 개발과 원가 절감을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ST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머리·몸체 처리장치·통신·전력관리·관절·손·센싱 등으로 나눠 접근하고 있다. 각 영역에 맞춤형으로 쓸 수 있는 MCU·센서·모터드라이버·전력관리 반도체·유무선 통신 칩을 공급한다.

그는 "로봇 비용을 낮추는 데 반도체 통합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MCU, 아날로그, 전력반도체 등을 하나의 칩이나 모듈로 통합하면 개발 기간과 제조 원가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휴머노이드 로봇용으로 500개 이상의 부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며 "로봇 한 대당 현재 약 600달러 규모의 부품원가(BOM)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ST가 휴머노이드에 필요한 반도체를 폭넓게 공급하고 있지만, 중앙 AI 두뇌를 직접 개발하는 것은 아니다. 라가스카 디렉터는 "ST는 엔비디아 같은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사가 아니며, 휴머노이드의 주된 두뇌 역할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라며 "다만 센서와 관절 같은 각 모듈에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일부 AI 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카메라가 이미지를 보고 휴대폰인지 생수병인지 식별하는 정도의 추론은 대형 GPU가 아니라 작은 AI 가속기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ST는 엔비디아와 피지컬 AI 생태계 확산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ST의 센서와 제어 기술을 엔비디아의 로봇 개발 플랫폼과 연결해 로봇 제조사가 더 빠르게 제품을 개발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레오파드 이미징과 함께 엔비디아 젯슨(Jetson)·아이작(Isaac) 플랫폼과 연동되는 멀티모달 비전 모듈도 선보였다.

한국 시장에 대해서는 중국 외 로봇 공급망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라가스카 디렉터는 "한국에는 휴머노이드 업체와 로봇 부품 업체를 포함해 로보틱스 분야의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며 "중국에는 많은 로봇 부품 공급사가 있지만, 중국 밖 공급망을 찾는 서구 로봇 제조사 입장에서는 한국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라가스카 디렉터는 2003년 ST 대만 지사에 시니어 애플리케이션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이후 중국·동남아시아·인도 지역 현장기술지원(FAE) 조직과 시스템 엔지니어링·전략 프로그램 부문을 거쳐, 현재는 산업 자동화와 로보틱스 분야에서 ST 솔루션 공급과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