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반도체용 유리기판 상용화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유리관통전극(TGV) 공정 기술을 고도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리기판을 차세대 먹거리로 낙점해 상용화를 추진 중인 LG이노텍과 해당 기술의 적용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상용화 수준에 근접한 장비 기술을 구현한 만큼, 후발주자로 꼽히는 LG이노텍이 경쟁사와의 격차를 상당 부분 좁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리기판은 기존 플라스틱 재질(유기)의 반도체용 기판이 가진 휨과 전력 공급·미세회로 형성의 한계를 보완할 차세대 패키징 소재로 꼽힌다. 인공지능(AI) 반도체가 대형화하면서 기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돼 업계에서는 '게임 체인저'로 불린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 생산기술원(PRI)은 최근 유리기판용 TGV 레이저 시스템 'AVEX-P500'을 개발했다. 이 공정을 적용해 글라스 코어(유리기판 가운데에서 형태를 지지하는 유리층)에 TGV를 형성한 실물 시료도 외부에 공개했다. 기판 한 장에 545만개 홀을 가공하고, 식각 전 불량을 검사해 선택적으로 보정하는 공정까지 구현한 것으로 확인됐다.
◇ 545만개 홀 가공·보정… 양산 고려한 공정 기술
LG전자 생산기술원은 자체 개발한 TGV 레이저 시스템으로 두께 0.5㎜인 유리 시료(BF33)에 종횡비 1대10인 홀을 구현했다. 두께 1.1㎜ 유리에서는 종횡비 1대20의 미세 구멍을 뚫었다. 종횡비는 구멍의 깊이를 지름으로 나눈 값으로, TGV에서는 유리 두께가 홀의 깊이에 해당한다. 수치가 높을수록 두꺼운 유리에 더 좁고 깊은 구멍을 가공했다는 의미다. 홀 모양이 원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나타내는 원형도는 97%, 상·하부 지름 비율은 98~99%로 제시됐다. 위치 정밀도는 ±3㎛, 측벽 거칠기는 약 0.5㎛ 수준이다.
홀 위아래의 지름 차이가 작다는 것은 내부가 지나치게 좁아지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을 억제했다는 뜻이다. 이는 후속 공정에서 구리를 빈틈없이 채우고 각각의 TGV에서 일정한 전기적 특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다.
LG전자가 개발한 TGV 공정을 활용하면 설계 조건에 따라 약 90분 동안 기판 한 장에 545만개 홀을 가공할 수 있다. 식각 전 패널 전체를 검사하고 레이저 개질 상태가 불량한 부분을 찾아 선택적으로 다시 처리하는 데에는 약 15분이 걸린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수백만개 홀을 실제 패널 단위로 처리할 수 있는 생산성과 검사·보정 체계를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유리기판 양산에서는 홀의 최소 크기보다 패널 전체에서 지름과 위치, 모양을 얼마나 균일하게 유지하느냐가 수율(양품 비율)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LG전자는 홀의 형상·위치·처리 시간·식각 전 검사 조건 등을 통해 유리기판에 접목 가능한 TGV 기술의 상용화 수준을 제시한 것"이라며 "공정 소요 시간이나 실제 양산 환경에서의 수율 확보 등 추가 검증이 필요하지만, 상당한 기술적 진보를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 레이저로 유리 물성 바꾼 뒤 식각… 미세 균열 줄여
TGV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유리의 위아래 회로를 연결하는 기술이다. 유리 내부에 수십만~수백만개의 미세 구멍을 만들고 구리 등 전도성 물질을 채워 수직 전기 통로를 형성한다.
유리는 단단하고 표면이 평평해 기판의 크기를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는 소재로 평가받는다. 반면 충격에 깨지기 쉬운 취성을 지니고 있어 미세 구멍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균열이나 파손이 발생할 수 있다. TGV가 유리기판 상용화의 핵심 난제로 꼽히는 이유다.
특히 AI용 반도체 기판으로 사용하려면 홀의 위치가 표면 회로와 정밀하게 맞아야 한다. 구멍 가운데가 좁아지거나 벽면이 거칠면 구리를 채우는 과정에서 빈 공간이 생겨 전기적 불량으로 이어질 수 있어 높은 가공 정밀도가 요구된다.
LG전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이저로 유리를 곧바로 파내는 대신, 구멍을 형성할 부분의 내부 물성을 먼저 바꾼 뒤 식각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검사와 보정 공정도 식각 전에 배치했다. 전체 과정은 '레이저 개질→검사→보정→식각→구리 충진→회로 형성' 순서로 진행된다. 개질은 재료 내부의 성질을 선택적으로 바꿔 후속 공정에서 해당 부분을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레이저로 유리를 직접 제거하면 가공 부위에 열이 집중되면서 미세 균열이나 파편이 발생할 수 있다. 개질과 식각을 결합하면 직접 천공 방식보다 열 영향을 줄이고, 두꺼운 유리에 상대적으로 곧은 홀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
◇ 합작사 만든 삼성전기, 고객 평가 돌입한 SKC… TGV 기술, LG이노텍 '반전 카드' 되나
LG이노텍은 유리기판 상용화 경쟁을 벌이는 인텔·SKC·삼성전기보다 사업화 단계가 늦다는 평가를 받는다. LG이노텍은 2024년 유리기판 상용화 개발을 시작, 작년 구미사업장에 시범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상용화 목표 시점은 2027~2028년이다.
반면 인텔은 10년 넘게 관련 기술을 연구해 왔다. 2023년 첨단 패키징용 유리기판 기술을 공개했고, 소재·장비·화학 기업과 관련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SKC는 자회사 앱솔릭스를 통해 미국 조지아주에 생산 거점을 마련했다. 현재 고객사에 시제품을 공급해 신뢰성 평가를 진행하는 단계다. 삼성전기도 세종사업장 파일럿 라인에서 유리기판 시제품을 만들고 있다. 지난 2일에는 일본 스미토모화학 자회사인 동우화인켐과 핵심 소재인 글라스 코어를 생산하는 합작법인 설립을 결정했다.
시장에서는 LG이노텍이 LG전자와 협업해 TGV 구현 난제를 풀어낸다면 경쟁사와 벌어진 기술 격차를 상당 부분 좁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LG전자는 LG이노텍과 TGV를 비롯한 반도체 후공정 장비의 적용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LG이노텍의 기판 기술에 LG전자의 레이저·검사 장비를 접목해 개발 속도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보인다"며 "LG전자가 상용화에 근접한 TGV 장비 기술을 확보한 만큼 LG이노텍의 공정 적용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LG이노텍은 유리 정밀가공 업체 유티아이(UTI)와도 협업 중인데, 여기에 LG전자의 장비·공정 기술까지 더해진 구조"라고 덧붙였다.
LG전자는 TGV 외에도 유리기판 표면에 미세 회로를 만드는 레이저 직접 이미징(LDI·Laser Direct Imaging)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LDI는 포토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설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레이저를 기판에 직접 조사해 회로 패턴을 만드는 설비다. 또 ▲유리와 인쇄회로기판(PCB)에 미세 구멍을 만드는 레이저 드릴링 ▲글라스 코어를 개별 기판으로 자르는 레이저 절단 ▲TGV 자동광학검사와 초음파 내부 결함 검사 장비 등도 개발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팬아웃 패널레벨패키징(FO-PLP)과 유리기판 시장을 합친 규모가 2024년 6억5000만달러(약 9800억원)에서 2030년 81억달러(약 12조2150억원) 이상으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