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공기관과 미국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가 계약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런던경찰청과의 계약은 법정 다툼으로 번졌고,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와의 대형 계약도 재검토 대상에 올랐다.
9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과 BBC에 따르면 팔란티어는 지난달 런던경찰청과의 계약을 사디크 칸 런던시장이 불법적으로 막았다며 해당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영국 고등법원에 제기했다.
팔란티어는 수사 증거 분석 등 일부 경찰 업무를 자동화하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제공하는 5000만파운드(약 1010억원) 규모의 계약을 추진했다. 영국에서는 국방부와 NHS 등도 팔란티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런던시는 지난 5월 계약을 승인하지 않았다. 런던경찰청이 조달 전략을 사전에 제출하지 않는 등 절차를 위반했고, 공개 입찰 없이 팔란티어만을 대상으로 계약을 추진했다는 이유에서다.
팔란티어 측은 런던시가 자사의 가치와 윤리를 문제 삼아 계약을 막은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루이 모슬리 팔란티어 영국 최고경영자(CEO)는 칸 시장이 "공공 치안보다 정치를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런던시는 이를 부인하며, 비용 대비 효율성 등 사업성도 계약 불허 배경이었다고 설명했다. 팔란티어는 연내 재판을 요청했지만, 담당 판사는 이날 재판을 내년 1월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은 팔란티어를 둘러싼 정치·안보 논쟁과도 맞물려 있다. 팔란티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경 이민 단속에 기술을 제공했고, 공동창업자 피터 틸이 트럼프 진영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논란이 이어져 왔다. 유럽에서는 군과 수사기관이 미국 기업의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데이터 주권 논쟁도 확산하고 있다.
NHS와의 계약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NHS는 팔란티어와 체결한 3억3000만파운드(약 6675억원) 규모의 데이터 플랫폼 계약을 내년 2월 갱신할지를 검토 중이다.
영국 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 9일 프리트 길 보건복지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NHS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관리·공유되는지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국민이 의료 데이터 공유를 꺼리게 되고, 정부의 디지털 전환도 제약받을 수 있다"며 계약 갱신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앞서 과학혁신기술위원회도 공급업체 의존도를 우려하며 정부에 재계약을 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유럽 각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독일 국내 정보기관인 연방헌법수호청(BfV)은 대테러·방첩 업무에 팔란티어 대신 프랑스 업체 챕스비전의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도입했다. 독일 연방군도 군용 클라우드 구축 사업에서 팔란티어를 배제하고 유럽산 솔루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도 팔란티어가 최근 7년간 연방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영업 활동을 벌였지만 최소 9차례 제안을 거절당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