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8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나노코리아 2026'을 찾은 관람객이 삼성전자 부스에서 6세대 고대역메모리(HBM4)와 7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E)를 살펴보고 있다./뉴스1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기점으로 글로벌 D램 3사의 셈법이 엇갈리고 있다. HBM 스택 맨 아래에서 D램 여러 층을 제어하는 '두뇌' 격인 베이스다이의 제조 공정이 기존 D램 공정에서 첨단 로직 공정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절대 성능'으로 시장 입지를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며, SK하이닉스는 성능과 안정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고 있으며, 마이크론은 안정성을 좇고 있지만 경쟁사에 비해 전환 속도가 한 박자 늦은 것으로 파악된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대역폭)를 극대화한 고부가가치 메모리로, 엔비디아 등이 만드는 인공지능(AI) 가속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이전 세대까지는 이 스택 맨 아래의 베이스다이도 일반 D램과 비슷하거나 더 안정적인 공정으로 만들어져 왔다. 그런데 HBM4부터는 이 베이스다이에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들 때 쓰는 첨단 공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어하느냐가 HBM 전체 성능을 좌우하게 되면서, 베이스다이의 완성도 자체가 메모리 3사의 새로운 경쟁 무대로 떠오른 셈이다.

반도체는 회로선폭이 미세할수록, 즉 나노 수치가 작을수록 속도가 빠르고 전력 소모가 적다. 다만 그만큼 만들기가 까다로워져 불량률이 높아진다는 득과 실이 따른다. 삼성전자는 가장 미세한 4나노 공정을 베이스다이에 적용해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전략을 택했다. SK하이닉스는 당장은 성숙 공정인 12나노에서 출발해 향후 3나노급으로 단계를 밟아가는 전략을, 마이크론은 성능 향상보다는 안정적인 공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자사 파운드리의 4나노 공정을 베이스다이에 그대로 적용해, D램과 로직을 한 회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구조를 택했다. 설계와 공정, 패키징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실제 엔비디아에 공급되는 HBM4 중에서 하이엔드 제품의 대부분을 삼성전자가 공급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D램 회사가 스마트폰 AP급 첨단 로직 공정을 자체 수율까지 끌어올려본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위험 요인도 함께 거론된다. 삼성전자의 4나노 파운드리 공정이 그간 애플·퀄컴 등 대형 고객사 수주전에서 TSMC에 밀린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SK하이닉스는 HBM4에 TSMC의 12나노 공정을 적용해 안정성을 확보하는 길을 택했다. 이미 애플·엔비디아·AMD 등 수많은 고객사를 거치며 검증된 공정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HBM4E(7세대 HBM)부터는 3나노급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으나, 아직 확정 단계는 아니다. 다만 TSMC 입장에서 HBM 베이스다이는 스마트폰·AI 가속기용 로직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물량이라, 대형 고객사 주문이 몰리는 시기엔 생산 일정이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거론된다.

마이크론은 자체 저비용 공정을 고수해오다 최근에야 첨단 로직 공정 검토를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원가를 우선하는 전략인 셈인데, 업계에서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대비 베이스다이 기술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TSMC와 '원팀'처럼 움직이는 SK하이닉스에 비해 협업도 우선순위에 밀린다.

반도체 장비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4나노 베이스다이는 이론상 SK하이닉스의 12나노 대비 속도·전력효율에서 앞설 수 있지만, D램 회사가 첨단 로직 공정을 자체 수율까지 끌어올린 전례가 없어 실제 양산 단계에서 수율이 안정화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가 검증된 공정에서 출발해 리스크를 낮추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HBM4E·HBM5(8세대 HBM)로 넘어갈수록 미세공정 전환 속도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나노 전략의 우위는 이번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 물량 확보 경쟁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