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업들이 고객사 현장에 투입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이뤄진 '전방 배치 엔지니어(forward-deployed engineer·FDE)' 전담 조직을 세워 기업용 AI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FDE란 기업에 파견돼 맞춤형 AI 구축을 지원하는 인력으로, 고객사가 AI를 활용해 실제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미국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가 2010년대에 처음 만들어 대중화시킨 직종으로, 이제는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의 러브콜을 받으며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9일 테크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FDE 전담 조직을 신설하거나 관련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 MS는 최근 약 25억달러(약 3조8000억원)를 투입해 FDE 조직 'MS 프런티어 컴퍼니'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6000명 규모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포함해 컨설턴트, 영업 인력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다.
아마존웹서비스(AWS)도 지난달 말 FDE 조직을 신설하고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새 조직에는 수천명에 달하는 FDE 인력을 배치할 예정이다. AWS는 "기업용 AI는 단순 자문(컨설팅) 단계를 넘어섰다"며 "기업이 원하는 것은 '조언'이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이며, 먼저 성과를 만들어내는 파트너가 앞으로의 AI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구글은 지난 5월 구글 클라우드 내 FDE 조직을 설립했고, 북미·유럽·아시아 등 주요 시장에 관련 엔지니어 채용에 돌입했다. 뉴욕에서 모집하는 FDE 직무 12개의 경우 기본 연봉이 12만7000달러(약 1억9000만원)~18만3000달러(약 2억7000만원)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서울 근무 조건의 한국 시장 대상 FDE 채용 공고도 냈다. 토마스 쿠리안 구글 클라우드 최고경영자(CEO)는 "구글의 기업용 AI 제품과 에이전트를 도입하려는 기업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FDE 조직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기업용 AI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오픈AI와 앤트로픽은 지난해부터 세일즈포스, 스노우플레이크, 데이터독, 팔란티어 출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대거 영입해 FDE 인력을 확충하고 있다. 양사는 올해 5월 사모펀드, 컨설팅 기업 등과 함께 FDE 합작사를 세워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오픈AI는 TPF, 브룩필드 자산운용, 베인캐피털 등과 손잡고 '오픈AI 디플로이먼트 컴퍼니'를 설립했고, AI 컨설팅 기업 토모로를 인수해 FDE 인력 150명을 확보했다. 앤트로픽도 같은 달 블랙스톤, 골드만삭스 등과 기업의 AI 도입과 구축을 전담하는 합작사를 만들었다.
빅테크 기업이 FDE 조직을 강화하는 이유는 AI 경쟁의 무게 중심이 AI 모델의 단순 공급에서 성공적인 안착과 성과 도출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실험 단계를 넘어 실제 업무에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FDE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겸 컨설턴트가 일정 기간 기업에 상주하면서 고객사의 업무 환경에 맞춰 AI 모델이 작동할 수 있도록 구축한다는 점에서 AI를 현장에 안착시키는 핵심 역할을 한다. AI 업계 관계자는 "AI 적용의 최대 병목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업의 복잡한 업무 흐름과 데이터 구조, 정책에 맞는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현장 밀착형' FDE 수요가 늘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미국 내 FDE 채용 공고는 지난해 4월 기준 643건에서 올해 4월 5330건으로 늘어 1년 사이 729% 증가했다. 테크 업계를 덮친 AI발(發) '감원 칼바람'에도 FDE 채용은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네이버클라우드가 지난 4월 FDE 조직을 만들어 국방 AI 수요 대응에 나섰다. 이달 8일에는 프랑스 대표 AI 기업 미스트랄AI와 제조 AI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는데, 미스트랄AI의 FDE가 국내 고객사 현장에 배치돼 기술 지원을 도맡기로 했다. 크래프톤은 국내 게임사 중 가장 먼저 FDE를 별도 직군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빅테크가 FDE 역량을 강화하면서 장기적으로 국내 IT서비스 업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고객사의 요구 사항에 맞춰 IT시스템을 설계·구축·운영하는 이들의 주요 업무가 사실상 FDE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삼성SDS, LG CNS, SK AX 등 국내 대표 IT서비스 기업들도 그간의 시스템통합(SI) 구축 경험을 AI 분야에 적용해 AX(AI 전환)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빅테크는 국내 IT서비스 기업들과 리셀러 계약을 맺고 자사 기업용 AI 제품과 솔루션의 판매를 추진 중이지만, 추후 자사 FDE 인력을 내세워 국내 AX 시장에 직진출할 경우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