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코리아가 9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개최한 'TI 모빌리티 & 로보틱스 세미나 2026' 기술 데모 부스에서 로봇 팔 구동 시연이 진행되고 있다./정두용 기자

"지난 10년간 자동차 산업의 혁신을 이끌어온 반도체 기술이 앞으로 로보틱스의 미래를 앞당기게 될 것입니다."

박중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코리아 대표는 9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TI 모빌리티 & 로보틱스 세미나 2026′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기차·자율주행차에서 검증된 반도체 플랫폼이 휴머노이드 등 여러 로봇의 상용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자동차와 로봇이 점차 유사한 시스템 수준의 과제를 공유하고 있다"며 "TI는 검증된 아날로그 및 임베디드 프로세싱 기술을 바탕으로 엔지니어들이 차세대 지능형 기계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TI코리아는 이날 자동차와 로보틱스 산업의 융합을 주제로 기술 발표와 데모 부스를 진행했다. 실시간 구동 루프(센서 정보를 모터 움직임에 계속 반영하는 제어 흐름), 모터 제어, 센싱, 통신, 레이더, 비전, 엣지 AI(기기 안에서 정보를 처리해 동작을 수행하는 AI), 48볼트(V) 전력 시스템 등 자동차용 반도체 기술이 로봇 설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소개했다. 업계 관계자와 연구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1930년 설립된 TI는 아날로그 반도체와 임베디드 프로세싱 칩을 주력으로 하는 미국 기업이다. 작년 매출은 176억8200만달러(약 26조6150억원), 영업이익은 60억2300만달러(약 9조690억원)를 기록했다. TI는 40년 넘게 자동차 반도체 사업을 해왔다.

박중서 TI코리아 대표가 9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TI 모빌리티 & 로보틱스 세미나 2026'에서 기조연설을 진행하고 있다./TI코리아

◇ TI "2035년 휴머노이드 시장 510억달러… 韓 생산 비중 30% 전망"

시장조사업체 욜그룹은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2025년 6억달러(약 9030억원)에서 2035년 510억달러(약 76조765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TI는 한국이 자동차·전자·배터리·제조·산업 자동화 기반을 갖춘 만큼 2035년 글로벌 휴머노이드 생산의 30%를 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TI는 커지는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차량용 반도체 기술로 성과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의 등장으로 배터리·모터·센서·통신·전력 제어 분야 반도체 탑재 비중은 크게 늘었다. 휴머노이드 역시 센서·관절·배터리·안전 제어 회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자동차와 기술적으로 닮았다.

박 대표는 "로봇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인식·제어·안전·고효율 전력은 이미 자동차에서 지난 수십 년간 발전해 온 기술"이라며 "전기차가 충전 인프라·배터리·48V 전력 구조·자율주행·차량사물통신(V2X)으로 진화한 흐름이 로보틱스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휴머노이드가 확산하려면 인식·조작·안전·전력이라는 네 가지 난제를 풀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사람은 물건을 집는 일을 쉽게 하지만, 로봇이 계란을 옮기거나 공을 던지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휴머노이드가 사람을 보조하려면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 "로봇 관절 움직이는 車 반도체… 실시간 제어가 핵심"

허정혁 TI코리아 이사는 '차세대 모빌리티·로보틱스를 위한 이더넷 기반 실시간 액추에이션 루프'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전기차 모터 트랙션과 산업 자동화용 정밀 제어 솔루션을 융합하면 로보틱스가 된다"며 "TI 내부에서도 로보틱스를 따로 준비한 것은 아닌데, 차량용 반도체 기술 역량을 갖춰 이미 상당히 잘 준비돼 있었다고 볼 정도"라고 말했다

휴머노이드에서는 전기 신호를 실제 움직임으로 바꾸는 과정인 액추에이션이 핵심 기술로 꼽힌다. 휴머노이드의 48V 배터리는 차량용 전력 시스템,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전력 분배 기술과 연결된다. 관절을 움직이는 모터 제어도 전기차의 트랙션 인버터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허정혁 TI코리아 기술지원 이사가 9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TI 모빌리티 & 로보틱스 세미나 2026'에서 기술 발표를 하고 있다./TI코리아

허 이사는 "모터가 원하는 위치에 정밀하게 제어되려면 우선 제어 속도가 빨라야 한다"며 "TI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은 모터 제어에서 자주 쓰이는 FOC 연산을 약 500나노초(ns)에 수행할 수 있고, 하이엔드 제품은 센싱부터 연산, PWM 반영까지 늦어도 1마이크로초(㎲) 안에 처리할 수 있다"고 했다. FOC는 모터의 자기장 방향과 전류를 제어해 효율과 정밀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자율주행차에서 주로 쓰이는 제어기·센서·모터가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는 내부 네트워크인 이더넷 기반 통신도 휴머노이드에 적용되고 있다. 허 이사는 "로봇에서 차기 통신으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이더캣(EtherCAT·산업 자동화에서 널리 쓰이는 실시간 이더넷 통신 방식)"이라며 "각 모듈과 인버터가 높은 대역폭으로 데이터를 주고받고, 낮은 지연 시간으로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 자율주행차·휴머노이드에 적용 가능한 반도체 기술 시현

기술 데모 부스에는 ▲로봇 관절 제어용 반도체 보드 ▲48V 배터리 관리 시스템 ▲레이더·비전 센서 퓨전 ▲SDV용 존 아키텍처 시연 장비 등이 배치됐다. 로봇 관절 제어 데모에서는 질화갈륨(GaN) 기반 전력 소자가 소개됐다. GaN은 기존 실리콘 전력 반도체보다 고속 스위칭과 고효율 구동에 유리한 소재다. TI코리아 관계자는 "GaN을 활용하면 발열을 줄이고, 같은 전력을 구동하면서도 보드 크기를 기존 대비 약 50% 낮출 수 있다"고 했다.

48V 배터리 관리 시스템 데모도 눈길을 끌었다. 로봇이 이동하려면 배터리팩을 탑재해야 하고, 각 셀의 전압·온도·상태를 실시간으로 관리해야 한다. TI코리아 관계자는 "로봇에도 배터리팩이 있고, 리튬이온 배터리를 관리하기 위한 칩셋이 보드 위에 부착돼 있다"며 "MCU와 통신하면서 셀 밸런싱을 하거나 화재 가능성을 미리 감지한다"고 말했다.

차량용 48V 존 아키텍처 데모에서는 와이퍼 구동 장치가 사용됐다. 기존 차량은 기능별 제어기 중심으로 구성됐다. 존 아키텍처는 차량을 물리적 위치별로 나누고, 가까운 센서와 구동부를 해당 제어기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기능별로 관리하던 구조에서 위치별로 묶는 방식으로 바뀌면 와이어 하네스 측면에서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