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3강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큰 차이가 없는 가격 수준에 제품을 판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대규모 증설 이후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치며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으나, 생성형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메모리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이 같은 전망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CXMT 로고./연합뉴스

6일 미국 반도체 분석업체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CXMT의 D램 평균판매가격(ASP)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대비 약 5~10% 낮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세미애널리시스는 중국 메모리가 가격 덤핑으로 글로벌 D램 가격을 끌어내릴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은 현재 시장 상황과 비교했을 때 부정확하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를 메모리 산업의 구조적 체질 변화를 알리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과거 메모리 시장은 공급 과잉과 가격 급락, 이에 따른 감산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경기순환(사이클) 산업의 특성을 보였다. 그러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본격화된 이후 시장의 고질적인 수급 역학 관계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3강 업체들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고용량 서버용 D램 생산 비중을 급격히 확대하면서, DDR4와 DDR5 등 범용 D램 공급량은 줄어들고 있다. 반면 AI 서버 투자 확대와 PC·스마트폰 등 전방 산업의 수요 회복이 맞물리면서 범용 D램 시장마저 공급 부족 현상이 가시화되는 추세다. 이처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후발 주자인 CXMT 역시 굳이 가격을 낮춰가며 치킨게임을 벌일 유인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CXMT는 이 같은 시장 환경의 수혜를 고스란히 누리며 세를 확장하고 있다. 최근 CXMT는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을 8% 안팎까지 끌어올리며 세계 4위 업체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공격적인 라인 증설을 통해 생산능력을 빠르게 키워가면서도, 시장의 예상과 달리 가격 인하를 통한 출혈 경쟁은 철저히 지양하는 행보를 보인다.

업계에서는 중국 업체의 원가 경쟁력 한계도 덤핑 공세가 사라진 주요 배경으로 꼽는다. 세미애널리시스는 CXMT의 DDR5 비트당 제조 원가가 선두 업체들과 비교해 30% 이상 높은 수준일 것으로 추정했다. 제조 원가가 충분히 낮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일 경우 수익성이 치명적으로 악화될 수 있는 만큼, 이익을 극대화하는 실리 전략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CXMT는 AI 메모리 수퍼사이클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세미애널리시스 추정치에 따르면 CXMT의 지난해 매출은 약 86억달러(약 13조1500억원)로 전년 대비 156% 급증했다. CXMT는 현재 중국 상하이 증시 과창판(STAR Market) 상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투자업계에서는 이번 기업공개(IPO)가 중국 반도체 역사상 최대 규모 중 하나가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메모리 제조사들의 강화된 가격 협상력은 주요 글로벌 세트(완제품) 고객사들과의 거래에서도 감지된다. 업계에서는 과거와 달리 PC·스마트폰·서버 제조사들이 메모리 가격 협상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고 보고 있다. AI 확산에 따른 구조적 공급 부족이 지속되면서 메모리 공급업체들의 가격 결정권이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시장의 시선이 집중되는 고부가 HBM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국 기업들이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세미애널리시스 분석에 따르면 CXMT 매출의 대부분은 DDR, LPDDR 등 범용 D램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HBM 생산 비중은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의 가파른 증설 추세는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변수가 되겠지만, 최소 향후 수년간은 AI 수요 폭발에 따른 공급 부족이 시장에 더 지배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며 "과거와 같은 하위 제품 중심의 치킨게임보다는 HBM과 차세대 서버 D램을 중심으로 한 고부가 메모리 경쟁이 시장의 핵심 축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