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본사 전경./인텔 제공

인공지능(AI) 시대 메모리 품귀로 시작된 공급 부족이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으로 옮겨붙으며 인텔과 AMD의 주가와 실적이 함께 질주하는 양상이다. 메모리 부족 이슈에 가려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던 CPU 부족이 두 기업의 구조적 성장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텔은 자사 CPU 수요가 그래픽처리장치(GPU) 대비 최대 4배까지 늘고 있다고 밝혔으며, AMD는 4분기 연속 서버 CPU 매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확보를 위해 빅테크와 체결해 온 장기공급계약(LTA) 관행이 CPU 업계로 옮겨붙고 있다. 에이전틱 AI 확산이 메모리에 이어 CPU까지 동시에 끌어올리는 '이중 호황'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메모리 품귀는 D램·낸드플래시 가격 급등이라는 형태로 시장에 가시화됐지만, CPU 수요 폭증은 납기 지연과 가격 인상, 인텔·AMD 주가 급등이라는 형태로 뒤늦게 반영되고 있다. 인텔 주가는 최근 1년간 480% 이상 급등했다.

◇ "GPU 4대 CPU 1대"… 인텔 CEO가 언급한 CPU 부족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8일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프런티어 모델 기업들과의 대화를 인용하며 에이전트 워크로드에서 일부 고객사의 CPU 수요가 GPU 대비 4대 1 비율에 달한다고 언급했다. 기업들이 에이전틱 AI를 도입하면서 GPU 1개를 구매할 때 CPU는 최대 4개까지 함께 사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탄 CEO는 JP모건 컨퍼런스에서도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과 워크로드 최적화 과정에서 CPU 의존도가 시장 예상보다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CPU 시장의 구조적 성장은 경쟁 구도 변화에서도 확인된다. 엔비디아는 지난 3월 GTC 2026에서 단독 판매용 CPU 랙을 처음 공개했다. 같은 달 Arm도 자체 AGI CPU와 공랭·수랭 랙 2종을 발표하며 인하우스 CPU 시장에 직접 진출했다. GPU 전문 기업들까지 CPU 자체 개발에 뛰어들 만큼 시장 규모와 수요 압박이 가파르다는 얘기다. 외신에 따르면 인텔은 미이행 CPU 주문 잔고로 인해 납기가 최대 6개월까지 늘어났고, AMD 역시 일부 제품 납기가 8~10주로 길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통상 납기 지연은 부정적 신호로 읽히지만, 이번 경우는 두 기업의 향후 매출 가시성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부족 국면에서 D램·낸드 계약을 선점하지 못한 업체들이 생산 차질을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CPU 시장에서도 물량 확보 여부가 서버·데이터센터 구축 일정을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 단기 발주에서 다년 계약으로… "CPU도 LTA 시대"

AMD의 라이젠 CPU./로이터연합뉴스

CPU 조달 방식의 변화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과거 CPU는 분기 단위 또는 단기 발주가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하이퍼스케일러와 서버 업체들이 수년 단위로 물량을 선점하려는 LTA 체결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이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장기 웨이퍼 계약으로 D램·낸드 물량을 선점했던 메모리 시장의 패턴과 유사하다. 조달 관행의 변화는 인텔·AMD가 그만큼 안정적인 중장기 매출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증권가에서도 두 기업의 실적 전망을 끌어올리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서버 CPU 시장이 2026년 430억달러에서 2030년 1250억달러(연평균 30.6% 성장)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씨티는 '에이전틱 CPU' 부문만 2030년 594억달러로 연평균 18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의 관심은 오는 23일로 예정된 인텔 2분기 실적 발표에 쏠려 있다. 18A 공정 수율 개선 속도와 구글 텐서처리장치(TPU) 위탁생산 램프업 여부, CPU 보안 이슈 등이 향후 실적과 주가 상승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