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주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800조원을 들여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호남 반도체 공장을 조성한다고 밝힌 가운데 정작 투자 주체인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실무진은 어리둥절한 반응이다. 기존 화성캠퍼스를 비롯해 평택, 용인, 미국 테일러 등에 설비투자 계획을 조율해온 경영진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변수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30일 삼성전자 DS부문은 이번 정부 발표에 대해 대외적으로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별도로 밝힐 부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구체적 협의 없이 발표된 대규모 투자 계획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의 한 임원은 "일단 큰 틀에서 계획이 잡힌 이후 투자와 운영 계획을 짜고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삼성이) 직접 의도한 투자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는 올해 1월부터 정치권과 지자체를 중심으로 고조됐던 호남 반도체 투자론에 대해 경계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또다른 삼성 반도체 관계자는 "올해 1분기부터 삼성 반도체가 호남에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외부 목소리에 대해 우려가 제기됐었지만 이처럼 대규모 투자 발표로 이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DS부문이 혼선에 빠진 이유는 설비투자가 진행 중인 평택, 용인, 미국 테일러 등 주요 거점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당 투자에 대해서도 삼성전자는 면밀한 시장 수요와 고객사와의 조율, 공정 전환과 기술 개발, 인력, 생태계 조성 등에 맞춰 시기를 조절해 왔다. 반도체 제조업의 특성상 이 같은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 투자할 경우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의 핵심 거점에 대한 인적, 설비 자원 배분 문제가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다. 우선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은 민·관·공 협의체가 7개월째 공전 중이고, 토지 보상조차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평택 캠퍼스의 경우 추가 라인 증설이 예정돼 있고, 화성 역시 연구개발(R&D)·생산기술 인력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가운데 호남이라는 신규 변수가 더해지면 한정된 설비 투자와 핵심 인력을 세 개 이상의 거점에 나눠 배분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
이번 국민보고회에서 800조원에 육박하는 투자 규모와 전공정 팹이라는 구체적 계획이 못박히면서 실무진의 부담은 한층 커졌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호남에는 전공정 팹이, 패키징(후공정) 공장은 충남 천안·온양에 들어선다. 광주에서 만든 웨이퍼를 경기·충청권까지 옮겨 후공정을 거쳐야 하는 구조다. 물류 비효율이 불가피하며, 완제품을 해외 고객사로 보내는 단계에서는 인천공항과의 거리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청와대는 메모리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 기존 계획을 앞당기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SK하이닉스 4호기는 완공 목표가 2044년에서 2034년으로, 삼성전자도 2048년 계획을 2034~35년으로 10여 년 앞당겨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정부 측 논리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팹 하나를 짓는 데만 7~8년이 걸리는 만큼, 2027년 이후 업황 '피크아웃' 전망이 현실화되면 호남 공장이 본격 가동되는 시점엔 시장 수요 자체가 달라져 있을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적잖은 재무 부담과 기술 전환 유연성에 모래 주머니가 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용인, 평택에 내려갈 사람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호남까지 인력을 분배해야 하는 문제부터 메모리 사이클이 공급 과잉 국면에 들어설 경우 막대한 손실 규모를 떠안아야 하는 등 위협 요소가 너무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