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21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초대형 인공지능(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를 발표했다. 스타게이트는 오픈AI·소프트뱅크·오라클 3사가 손잡고 2029년까지 미국에 최대 5000억달러(약 770조원)를 투입해 AI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야심찬 프로젝트 발표에 거대한 자본을 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참석했지만, 이들을 대신한 주인공은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지난 29일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반도체·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총 80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 4기를 짓는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보고회에는 이례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참석했는데, 두 총수는 장관들의 발표 이후 자사 투자 계획을 설명했다. 기업의 앞날을 좌우할 투자 발표의 주도권을 기업 총수가 아닌 대통령이 쥔 듯한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을 가진 두 정부의 행보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보여준다. 대규모 투자에 정부가 나서는 모습은 첨단산업 경쟁에서 국가가 조정자이자 촉진자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듯하다. 하지만, 발표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정부 발표에서 각 기업은 지역 투자를 '언제까지' 하겠다는 목표는 제시하지 않았다. 현실화에 의문이 드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정부의 요구에 기업이 협조하면서 적당히 장단을 맞춰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나마 AI 데이터센터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정부는 2029년까지 550조원을 투자해 SK·GS·네이버와 협력해 8.4기가와트(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2035년까지 10GW의 센터를 추가로 짓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1000조원이 넘는 민관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 현실화가 불투명해보인다. 데이터센터는 발전설비와 송전망 확보가 선행되지 않으면 수백조원의 투자가 그저 계획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AI 데이터센터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전력을 소비하는 시설이다. 인프라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데이터센터는 거대한 빈 건물에 그칠 수 있다. 8.4GW는 원전 7~8기 수준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원전·화력 등 전원 믹스로 전력을 공급하고 345kV 변전소 정보를 공개, 에너지솔루션 실증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계획이라고 지적한다. 익명의 한 정부 관계자는 "국내에 있는 원전을 다 돌려도 턱없이 부족한데 이는 고속도로는 안 깔고 물류센터만 짓는다는 발표랑 뭐가 다르냐"고 말한다.
천문학적 숫자와 화려한 발표가 산업 경쟁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현재 당초 구상보다 진행 속도가 늦어지고 있으며, 일부 투자 계획이 축소·재조정되고 있다. 또한 참여 기업들 사이에서 투자 구조와 주도권을 둘러싼 이견이 제기됐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스타게이트가 보여주듯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투자 규모를 선언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전력·송전망 등 인프라·자금이다. 화려한 청사진은 현실의 인프라 앞에서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국가가 산업을 지원하는 것과 투자 지도를 직접 그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투자 시기와 입지, 산업 배치까지 정부가 설계하기 시작하면, 시장의 효율성과 기업의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 진정한 산업 경쟁력은 정부가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 정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가장 효율적인 곳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와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