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은 이제 전력을 얼마나 빨리 확보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부지를 결정합니다."

앤드류 그린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아시아태평양(APAC) 데이터센터 그룹 총괄은 28일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개발 분야에서 30년 이상 경력을 쌓은 그는 전 세계 주요 지역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전문가다.

그린 총괄은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입지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통신망과 고객 접근성, 확장 가능성 등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필요한 전력을 얼마나 빨리 공급받을 수 있는지가 투자 여부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수도권에 집중됐던 데이터센터 개발이 부산과 울산 등 비수도권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원자력 발전, 산업용 전기요금 등 정책이 정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사업자들에게 불확실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앤드류 그린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아시아태평양(APAC) 데이터센터 그룹 총괄.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제공

◇ AI가 바꾼 데이터센터의 조건… "전력 확보 속도가 경쟁력"

하이퍼스케일러들은 데이터센터 부지를 선정할 때 광통신망 연결성, 접근성, 장기 확장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 그린 총괄은 이 가운데 전력 확보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필요한 전력을 얼마나 빨리 공급받을 수 있는지, 이른바 '스피드 투 파워(speed-to-power)'가 데이터센터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전력 공급까지 18개월 이상 걸리는 지역은 투자 유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는 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이 있다. 수년 전만 해도 서버 랙 한 대당 전력 사용량은 10㎾(킬로와트) 미만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140㎾를 넘어섰으며 2028년에는 300㎾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데이터센터 설계 방식도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랙당 30kW 이하 수준에서는 기존 공랭식 냉각 시스템으로 열을 식힐 수 있지만, 140㎾를 넘어서면 액체 냉각이 필수적이다. 그린 총괄은 이에 따라 바닥 하중, 층고, 전력분배장치(PDU), 냉각분배장치(CDU) 등 데이터센터 설계 기준 전반을 완전히 재설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분산법 시행 후 부산·울산이 새 데이터센터 거점으로

국내 데이터센터 시장의 지형도 바뀌고 있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수도권의 전력 부족과 높은 토지 비용으로 데이터센터 개발의 탈수도권 현상이 빨라지고 있다. 2025년 기준 비수도권 지역이 전체 개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1%까지 확대됐다.

2024년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은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 법은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해당 지역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수도권 중심의 전력 공급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에 따라 대체로 전력 여유가 있고 재생에너지 확보가 쉬운 비수도권의 경쟁력이 한층 높아졌다.

부산과 울산은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수혜 지역으로 꼽힌다. 2024년 9월 마이크로소프트는 부산에 데이터센터를 준공했으며, 2025년 6월에는 AWS와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참여하는 부산~후쿠오카 간 260㎞ 규모의 해저 광케이블 구축 사업이 발표됐다. 같은 달 SK그룹과 AWS는 울산에 대규모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짓기로 했다.

그린 총괄은 "하이퍼스케일러의 투자 결정은 이 지역에 대한 장기 성장 의지를 보여준다"며 "이들 지역이 주요 상업지구나 사업자의 서비스 권역과 잘 연결된다면 새로운 데이터센터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1,2,3,4호기 모습. /뉴스1

◇ "수요 꾸준하지만 정책 예측 가능성 뒷받침돼야"

그린 총괄은 한국의 데이터센터 시장 경쟁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한국은 아시아태평양의 핵심 시장 중 하나"라며 "현재 운영 용량이 843㎿(메가와트)에 달하고 조만간 1GW(기가와트)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이퍼스케일러와 금융권, 인공지능(AI), 고성능 컴퓨팅(HPC) 분야를 중심으로 신규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사업자들의 장기적인 투자 확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정권 변화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며 "원자력 발전, 재생에너지 확대, 전기요금 정책의 변화는 장기간 투자 회수 계획을 세우는 사업자들에게 전력 비용과 향후 에너지 구조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성장세를 지속하려면 정부가 전력과 관련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확충해 신규 개발 과정에서 지연이나 병목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신규 개발뿐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요구사항도 초기 단계부터 반영해 한국이 설정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