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는 최고경영자(CEO) 승계정책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지만, 자회사 KT스카이라이프는 대표 후보군 관리와 비상 승계 절차를 담은 명문화된 규정을 갖추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KT스카이라이프는 올해 대표 선임 닷새 만에 사임 사태를 겪었고, 후임 대표 선임까지 두 달 가까이 직무대행 체제가 이어졌다. 이 기간 국내 증시가 급등했지만 KT스카이라이프 주가는 거꾸로 하락했다. 대표 교체는 배당정책, 사업 전략, 주주환원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상장 자회사도 예측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CEO 승계 절차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KT스카이라이프는 "CEO 승계정책 마련·운영 안해"
24일 KT스카이라이프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지배구조 핵심지표 가운데 '최고경영자 승계정책 마련 및 운영' 항목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KT스카이라이프는 보고서에서 "최고경영자 선임 프로세스에 대한 명문화된 정책은 없으나 적합한 자를 후보 추천하고 주주총회 결의를 통해 선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회사 KT는 지난달 29일 공시한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같은 항목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룹 모회사에는 CEO 승계정책이 있지만, 상장 자회사에는 명문화된 대표 승계정책이 없는 셈이다. 승계정책 부재가 주목되는 것은 올해 실제 대표 공백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조일 전 대표는 지난 3월 26일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대표이사로 선임됐지만, 같은 달 31일 사임했다. 선임 닷새 만이었다. 이후 김상균 경영기획총괄 부사장이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맡았고, 회사는 5월 27일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어 지정용 대표를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KT스카이라이프는 최고경영자 선임 사유가 발생하면 '주요 주주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대표이사 후보자를 구성하고, 이사회가 전문성·기업 경영 경험·리더십 등을 검증해 주주총회에 사내이사 후보자로 추천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돌발 퇴임이나 유고 상황에 대비해 평상시 후보군을 관리하고, 비상 승계 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정해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는 CEO 승계정책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후보군 구성 단계에서 "주요 주주와의 긴밀한 협의"를 거친다는 표현은 이사회 독립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KT스카이라이프의 최대주주는 지분 50.31%를 보유한 KT다. 소액주주 지분율도 38.03%에 달한다. 대표 후보군이 최대주주와의 협의를 통해 구성된다면,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대표 선임 절차가 이사회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실제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스카이라이프지부도 지정용 대표 선임 당시 대주주 KT가 밀실 인사를 벌여 경영 공백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대표 교체 과정이 투명하게 진행되지 않았고, 상장사 CEO 인사가 이사회 검증보다는 대주주 판단에 좌우됐다고 주장했다.
◇ 코스피 50.7% 오를 때 KT스카이라이프 주가 13.8% 하락
이 기간 KT스카이라이프 주가는 시장 흐름과 엇갈렸다. 조 전 대표가 선임된 3월 26일 5120원이던 KT스카이라이프 주가는 사임일인 3월 31일 4710원까지 8% 하락했다. 박윤영 KT 대표가 취임하기 전 조 전 대표가 선임되자 업계 일각에서는 "모회사인 KT 신임 CEO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은 선임"이라며 대표이사 교체 가능성이 거론됐다.
조 전 대표 사임 이후에도 두 달 가까이 대표 공백 상태가 이어졌고, 회사 주가는 지지부진했다. 새 대표가 선임된 5월 27일에는 4415원까지 밀렸다. 조 전 대표 선임일부터 새 대표 선임일까지 KT스카이라이프 주가는 13.8% 떨어졌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3월 26일 5460.46에서 5월 27일 8228.70으로 50.7% 상승했다.
주가 하락 원인을 CEO 승계정책 부재로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유료방송 시장 침체, 위성방송 가입자 감소, 실적 부진, 중소형주 수급 부진 등 여러 요인이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다만 대표 선임 직후 사임과 장기간 직무대행 체제는 투자자 입장에서 경영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대표 교체가 불가피한 상황이더라도 상장사는 절차와 기준을 시장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승계정책 부재는 내부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주주가치 측면에서도 점검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보완 계획을 내놨다. KT스카이라이프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서 "경영 공백 최소화 및 경영 연속성 확보"를 위해 대표이사 승계 관련 내부 운영 원칙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필요할 경우 이사회가 대표이사 후보군과 비상 승계 절차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만 이 같은 계획은 대표 공백 사태를 겪은 뒤에야 제시됐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학과 석좌교수는 "CEO 승계정책은 경영 연속성을 확보하고, 대표 교체 절차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며, 최대주주와 이사회 사이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정리하는 장치"라면서 "KT스카이라이프 사례는 상장 자회사에서 그룹 차원의 인사 결정과 독립적 지배구조 사이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