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내부./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가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양산 확대에 속도를 조절하면서 범용 D램 시장 공략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미 HBM 매출 비중이 40%를 넘어 압도적 우위를 다진 만큼, 무리한 증설 경쟁보다 공급 부족이 극심한 범용 D램에서 추가 수익을 확보하는 쪽으로 자원 배분을 조정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당초 HBM4로 전환할 예정이었던 일부 5세대 HBM(HBM3E) 생산라인 전환을 다소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HBM보다 더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범용 D램 시장 대응력을 늘려 추가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방침이다. HBM 시장에서 이미 탄탄한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무리하게 HBM4·HBM4E(7세대 HBM) 전환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 같은 전략 선회의 배경에는 범용 D램과 HBM 간 수익성 역전 현상이 자리한다. 올해 1분기 기준 범용 D램의 기가비트(Gb)당 가격은 아직 HBM에 못 미치지만, 영업이익률 격차는 이미 15%포인트(P) 이상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신증권은 범용 D램 영업이익률이 연내 이론적 최고점인 9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SK하이닉스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 경영진 입장에서도 경쟁사(삼성전자)가 이미 HBM보다 범용 D램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HBM4는 아직 엔비디아의 품질 인증 절차가 진행 중이며, HBM4가 탑재될 엔비디아의 차세대 칩 '루빈' 생산량 전망도 하향 조정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HBM 전환에 속도를 낼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해외 투자은행(IB)의 시각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골드만삭스는 SK하이닉스가 최소 2026년까지 HBM3(4세대 HBM)·HBM3E(5세대 HBM)에서 50% 이상의 지배적 지위만 유지하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모건스탠리는 SK하이닉스 가치의 핵심 동인을 HBM 점유율 방어가 아닌 메모리 전반의 가격 사이클로 짚으며, 2026년 D램 평균판매단가가 62%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근거로 실적 전망치를 56~63% 상향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 실적 발표에서 D램 평균판매단가(ASP)가 60%대 중반 상승했다고 밝혔으며, 고밀도 서버 모듈과 모바일 제품 수요 대응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3년 단위 DDR5 공급 계약을 체결한 점도 범용 D램에서 장기 실적 가시성을 확보하려는 행보로 해석된다.

반면 SK하이닉스가 HBM4 물량 조절에 나서면서,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점유율 상승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점유율은 작년 4분기 57%를 기록했으나 점차 축소될 가능성이 거론되며, 삼성전자가 올 하반기 HBM4 양산에 성공할 경우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이 50~60%선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