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렌트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데이터센터 반도체 시장 전략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인수는 스마트폰용 스냅드래곤을 기반으로 PC, 확장현실(XR), 자동차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온 퀄컴이 데이터센터용 AI 반도체 시장으로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로 해석된다.

퀄컴 로고./뉴스1

22일 로이터 등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퀄컴의 텐스토렌트 인수 거래 규모는 80억~100억달러(약 11조~14조원) 수준으로 거론된다. 현재 협상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퀄컴과 텐스토렌트 양사는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를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AI 서버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위한 퀄컴의 전략적 포석으로 보고 있다. PC·XR·자동차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온 퀄컴이 AI 서버 시장까지 진출해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모바일과 자동차, 데이터센터를 모두 아우르는 통합 비즈니스를 전개하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모바일 시장 성장 둔화와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맞물리면서 퀄컴도 새로운 성장축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와 AI PC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운 데 이어 데이터센터 시장까지 진출 범위를 넓히며 모바일 AP 기업에서 AI 플랫폼 기업으로 체질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퀄컴은 최근 AI 데이터센터 관련 자산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25년 6월 알파웨이브 세미 인수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12월 완료한 데 이어, 같은 달 벤타나 마이크로시스템즈 인수도 발표했다. 여기에 AI 가속기 기술을 보유한 텐스토렌트까지 확보할 경우 AI 서버 구축에 필요한 가속기·중앙처리장치(CPU)·연결 기술 포트폴리오를 모두 갖추게 된다.

이 인수가 성사되면 퀄컴은 AI 추론 시장에서 비용 대비 성능을 앞세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현재 엔비디아의 AI 칩은 초고가의 HBM(고대역폭메모리)을 필수적으로 쓰기 때문에 단가가 매우 높다. 반면 텐스토렌트는 HBM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일반 GDDR 메모리를 쓰면서도, 칩 내부에 임시 초고속 저장 공간(SRAM)을 크게 만들어 성능을 메우는 역발상 기술을 갖췄다.

퀄컴 입장에서는 엔비디아보다 비용 부담이 훨씬 적은 '가성비 AI 추론 서버 칩'을 단숨에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이미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와 주요 완성차 업체에 칩을 공급하며 강력한 B2B 영업망을 다져놓은 퀄컴이기에, 향후 고객사들에게 모바일·자동차 칩에 이어 데이터센터용 AI 서버 칩까지 한 번에 일괄 공급하는 '풀세트 묶음 판매(턴키)' 영업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가장 큰 이점으로 꼽힌다.

텐스토렌트는 2016년 설립된 AI 칩 스타트업으로, 반도체 설계 업계의 거장으로 꼽히는 짐 켈러 CEO가 이끄는 곳이다. 짐 켈러는 AMD K7·K8 아키텍처 설계, 애플 A4·A5 프로세서 개발, 테슬라 자율주행 칩 개발 등에 참여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거래가 텐스토렌트의 기술 자산뿐 아니라 짐 켈러를 중심으로 한 베테랑 설계 인재 확보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평가한다. 다만 인수 이후 짐 켈러를 비롯한 핵심 엔지니어링 인력의 잔류 여부는 변수로 남아 있다.

AI 반도체 시장의 무게중심이 초기 대규모 학습용 GPU 중심에서, 서비스 운영 효율과 전력, 총소유비용(TCO)을 함께 따지는 '추론 중심'으로 이동하는 점도 가성비를 무기로 한 텐스토렌트에 우호적인 환경이다. 업계에서는 추론 시장 확대가 다양한 AI 칩 아키텍처에 새로운 시장 진입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인수 추진은 퀄컴의 RISC-V 전략과도 연결된다. RISC-V는 특정 기업에 로열티(라이선스 비용)를 지불하지 않고 누구나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 CPU 설계도다. 스마트폰 칩 시장에서 모바일 설계도를 독점한 Arm 홀딩스와 가파른 로열티 소송을 벌여온 퀄컴 입장에서는, 향후 폭발적으로 성장할 데이터센터 영역만큼은 Arm의 통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설계 선택지와 기술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국내 산업계와의 연결고리도 존재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23년 텐스토렌트 투자 라운드에 참여한 주요 투자사 가운데 하나다. 인수가 성사될 경우 현대차그룹의 평가상 투자 이익 실현 가능성이 거론된다. 향후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자율주행, 로봇용 AI 반도체 분야에서 퀄컴 오토모티브 플랫폼과의 전방위적 협력 확대 가능성도 제기된다. 텐스토렌트와 협력 이력이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경우, 향후 퀄컴의 글로벌 공급망 전략 변화에 따라 수주 전선에 일부 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인수 이후 과제는 적지 않다. 퀄컴은 이미 자체 데이터센터용 AI 가속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고, 벤타나 인수를 통해 서버 CPU 역량도 확보한 상태다. 텐스토렌트까지 더해질 경우 내부 칩 포트폴리오와 로드맵 조정이 오히려 복잡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더 근본적인 과제는 소프트웨어 생태계다. 엔비디아가 시장을 지배하는 진짜 무기는 칩 성능보다 수십 년간 전 세계 개발자들이 사용해 온 독점 소프트웨어 플랫폼 'CUDA(쿠다)'의 장벽이다. 업계에서는 텐스토렌트의 아키텍처가 기술적·가격적으로 차별화돼 있더라도, 실제 개발 현장에서 엔비디아만큼 편하게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 호환성과 툴체인을 퀄컴이 단기간에 증명해낼 수 있을지가 시장 안착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