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발 메모리 수요 급증이 D램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PC·모바일 제조사들의 실적이 엇갈리고 있다. 동일하게 비용 충격을 받았지만 대응 전략에 따라 마진 방어 여부가 좌우되는 양상이다. 세계 최대 PC 회사 레노버는 프리미엄 제품 비중을 높이는 전략으로 수익성 방어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애플과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기업들은 장기계약과 현금력을 바탕으로 위기를 일정 부분 상쇄하고 있다. 반면 중국 샤오미는 물량은 확보했지만 수익성 방어에는 실패한 성적표를 받았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PC 제조사들의 제품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이 35%에서 많게는 4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5~18% 수준이었던 비중이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뛴 셈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가 범용 D램 생산라인을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고마진 제품으로 전환하면서 PC·모바일에 들어가는 일반 메모리 공급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된다.
◇ 메모리 가격 인상에 희비 엇갈린 기업들
충격을 가장 정면으로 받은 곳은 HP다. HP는 다음 분기 주당순이익(EPS) 가이던스를 시장 기대치 밑으로 낮췄고, 실적 발표 당일 주가는 52주 최저치로 떨어졌다. 반면 레노버는 같은 기간 제품 믹스를 프리미엄 위주로 전환해 PC 사업부 영업이익을 20%대로 끌어올렸다. 메모리 비용 부담을 가격에 그대로 떠넘기기보다, 마진이 더 높은 고급 라인업 비중을 늘려 충격을 상쇄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애플과 삼성전자는 장기 공급계약과 현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12~24개월치 메모리 물량을 미리 확보해 가격 부담을 구조적으로 상쇄하고 있다. 다만 애플은 보급형 모델 사양을 낮추고 일부 신제품 출시를 늦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메모리 사업을 한 지붕 아래 두고 있어 물량 배정 측면에서는 다른 기업보다 유리한 처지다.
하지만 실적 측면에선 다른 양상을 보였다. 애플은 지난 4월 실적발표에서 아이폰 매출이 570억달러에 육박해 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22% 늘어난 수치다. 전체 매출도 1112억달러로 17% 증가했고, 매출총이익률은 49.3%로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부(MX)는 애플과 다른 그림을 보였다. 올 1분기 매출은 38조1000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30%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조8000억원에 그쳐 전년 대비 34.88% 줄었다.
삼성전자는 한 지붕 아래 스마트폰, 메모리 사업을 모두 보유하고 있지만, 사업부별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경영 방침상 이른바 '가족 할인'은 없다는 게 내부 전언이다. 실제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부는 갤럭시S26 시리즈 출시 가격을 기본 모델 기준 미국에서 약 5%, 플러스 모델은 10% 가까이 올렸다. 메모리 사업부가 모바일용 D램 가격을 1년 만에 거의 두 배(12기가바이트 기준 약 70달러)로 올리고, 장기계약 대신 분기 단위 단기계약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거래 방식을 바꾼 것이 모바일 사업부의 부담을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 中 모바일 기업, 원가 인상 타격 뼈아파
중국 샤오미는 올 1분기 스마트폰 부문 매출이 443억위안으로 전년보다 13% 줄었고, 출하량도 19% 감소한 3380만대에 그쳤다. 스마트폰 부문 매출총이익률은 12.4%에서 10.1%로 내려갔고, 회사 전체의 순이익은 57% 급감한 47억위안에 머물렀다. 2026년 연간 메모리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했음에도 가격 인상은 피하지 못한 결과다.
윌리엄 루 샤오미 사장은 실적발표에서 메모리 가격 인상이 매우 긴 사이클이 될 것이며, 중저가 모델 출하를 조절하고 제품 믹스를 조정해 규모와 마진의 균형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샤오미뿐 아니라 가격 경쟁으로 승부하던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 대부분이 삼성, 애플 등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고 말했다.
주요 시장조사업체들은 이런 구조적 메모리 공급 부족이 적어도 2027년까지 이어지고, 가격 안정은 2028년 전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메모리를 둘러싼 PC·모바일 업계의 생존 게임은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