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희 전 SK하이닉스 대표이사(사장). /SK온

인텔이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대표이사(사장)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 수석부사장으로 영입했다. SK온 대표이사(사장)도 지낸 이 전 사장은 국내 반도체·제조 업계 베테랑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인텔은 지난 4월 삼성전자 파운드리 영업을 총괄했던 한승훈(숀 한) 전 삼성전자 부사장도 영입한 바 있다.

인텔의 이 전 사장 영입 발표는 미국 정부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역량 강화를 강조하는 국면에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애플이 미국에서 칩을 설계하고 제조하기 위해 인텔과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테슬라·엔비디아에 이어 애플까지 인텔과 협업에 나선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인텔 지분 10%를 들고 있는 최대 주주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텔 밀어주기' 기조에 맞춰 한국 반도체 핵심 인재 영입으로 파운드리 역량 보강에 나선 모습이다.

인텔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 전 사장을 인텔 파운드리 수석부사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 전 사장은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보고하며 첨단 패키징, 시스템 통합, 후공정 기술 개발, 후공정 제조를 총괄한다.

이 전 사장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이후 SK온 사장으로 배터리 사업을 이끌었다. 인텔에서도 엔지니어링 리더십 역할을 맡은 경력이 있다. 인텔은 이 전 사장이 첨단 공정 기술과 대규모 제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인텔은 이번 인사와 함께 첨단 패키징을 별도 리더십을 둔 사업 축으로 세우기로 했다. 패키징은 여러 반도체를 하나로 묶어 성능과 전력 효율을 높이는 공정을 말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는 로직·메모리·네트워크 칩 등을 고성능으로 연결해야 해 첨단 패키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립부 탄 인텔 CEO는 "첨단 패키징과 시스템 통합은 차세대 컴퓨팅 시스템을 규정하는 역량이 되고 있다"며 "이 전 사장은 복잡하고 대규모인 기술·제조 조직을 이끈 경험과 실행력을 갖춘 리더"라고 말했다. 탄 CEO는 이 전 사장이 로직, 메모리, 네트워킹 등 다양한 부품을 결합하는 인텔의 시스템 통합 역량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사장은 "AI와 고성능 컴퓨팅 전반에서 시스템 수준 통합 수요가 빨라지는 가운데 인텔은 첨단 패키징을 선도할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며 "인텔의 기술 리더십과 제조 역량, 고객 약속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인텔 파운드리 부문 수석부사장으로 합류한 한승훈 전 삼성전자 부사장./링크드인 캡처

앞서 인텔은 지난 4월 한승훈 전 삼성전자 부사장을 파운드리 서비스 부문 수석부사장 겸 총괄 매니저로 영입했다. 한 전 부사장은 삼성전자에서 30년간 반도체 경력을 쌓았고, 최근에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영업을 총괄했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한국 반도체 업계 베테랑 인사들을 연달아 영입한 건 파운드리 역량 보강을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파운드리 고객 확보와 첨단 패키징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려는 목적으로 인적 보강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인텔은 이 전 사장 선임에 따라 나가 찬드라세카란 인텔 파운드리 수석부사장이 전공정 기술 개발과 전공정 제조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찬드라세카란 부사장은 인텔 18A, 인텔 14A와 이후 공정의 양산 확대를 이끌고, 설계 지원과 고객 대응 기능도 계속 맡는다.

인텔은 이 전 사장의 영입을 발표하며 첨단 패키징 기술인 '임베디드 멀티다이 인터커넥트 브리지-T'(EMIB-T)와 '하이브리드 본딩 인터페이스'(HBI)의 대량 양산 준비도 언급했다. EMIB-T는 여러 칩을 고속으로 연결하는 인텔의 패키징 기술이고, HBI는 칩과 칩을 더 촘촘하게 연결해 대역폭과 전력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인텔은 2021년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뒤 첨단 공정과 패키징을 함께 제공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제조 역량 회복을 강조하고 빅테크의 인텔 협력이 부각되면서,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주도해 온 첨단 파운드리 시장의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인텔의 한국 반도체 인재 영입과 미국 빅테크 고객 확보 움직임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에 이어 테일러 공장에서도 선단 공정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를 확대하려는 고객사들이 인텔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질수록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인텔의 수주 경쟁도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