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린트너(Leif Lindner) IFA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가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IFA 2026 한국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정두용 기자

"8~9년 전에는 세계 가전 시장에서 혁신의 상당 부분이 한국에서 나왔습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여전히 최고 수준의 혁신 기업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이센스·TCL·샤오미 같은 중국 기업도 혁신 기업이라는 점을 세계 시장에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은 소비자에게 '왜 이 제품을 사야 하는지'를 더 분명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라이프 린트너(Leif Lindner) IFA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는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IFA 2026 한국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중국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넘어 제품 혁신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세계 가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도 기술력과 브랜드 인지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가전 기업이 중국에 밀리지 않으려면 제품이 소비자 생활에 어떤 가치를 주는지 더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봤다.

IFA는 1924년부터 매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 가전·IT 전시회다. 미국 소비자가전전시회(CES),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와 함께 세계 3대 IT 전시회로 꼽힌다. IFA 2026은 오는 9월 4일부터 8일(현지시각)까지 열린다.

린트너 CEO는 IFA가 한국 기업의 글로벌 가시성을 높이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IFA와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국가는 중국 다음으로 한국"이라며 "중국 기업에 길을 내주지 않겠다는 한국 기업의 자신감과 역량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IFA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라 유통사·리테일러·미디어·소비자·투자자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플랫폼"이라며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파트너를 만나고 실제 거래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린트너 CEO는 2023년 10월 IFA 매니지먼트 CEO로 취임했다. 25년 이상 전시·가전 업계에서 일했고, 삼성전자 독일법인에서 가전·소비자가전 부문을 담당한 경험이 있다.

◇ "소비자는 더 합리적으로 변해… 구매 이유 명확해야"

린트너 CEO는 최근 세계 소비자들이 제품 구매에 더 신중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 이상 인공지능(AI)·자동화·에너지 절감·프리미엄 기능의 추가만으로는 제품 매력도를 높이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소비자들은 이제 제품을 살 때 자신에게 무엇이 돌아오는지를 더 자세히 보고 있어 기업들은 체감 가능한 효용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며 "새 기능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지금 이 제품을 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업이 앞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시장도 이런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린트너 CEO는 "유럽에서는 에너지 가격과 생활비 부담으로 소비자가 지출을 아끼려는 흐름이 있다"며 "대형 가전은 신규 주택 건설 감소로 압박을 받고 있고, TV는 교체 수요 중심의 시장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IFA 2026은 이런 시장 변화를 반영해 ▲AI 기반 라이프스타일 ▲차세대 스마트홈 ▲지속가능성 ▲디지털 헬스 ▲콘텐츠 크리에이션 ▲소비자 테크 경험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한다.

최신 기술을 볼 수 있는 다양한 행사도 열린다. 로봇 런웨이·로보컵을 비롯해 인디 게임, 모빌리티 트랙, 뷰티 허브, 야외 조리·가드닝, 스마트 리빙 포럼 등을 새로 도입했다. 린트너 CEO는 "제품 출시와 시연, 산업 의제 설정, 유통 네트워크를 한 공간에서 연결하는 것이 IFA의 역할"이라고 했다.

린트너 CEO는 IFA가 한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가전 구독 모델이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유럽은 여전히 캐시백이나 가격 할인 중심의 마케팅을 하는 경우가 많아 제품과 유통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면이 있다"며 "한국의 구독 모델은 가격 자체보다 사용 경험과 접근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유럽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국은 구독 모델로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라이프 린트너(Leif Lindner) IFA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가 1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IFA 2026 한국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정두용 기자

◇ "IFA는 거래가 일어나는 전시회"… 리테일 네트워크 강조

린트너 CEO는 IFA가 CES·MWC와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리테일 네트워크를 꼽았다. IFA에는 세계 100여개국의 주요 유통사와 리테일러가 참여한다. 행사 개막 전에는 주요 리테일러와 업계 관계자를 초청하는 리테일 서밋도 열린다.

린트너 CEO는 "IFA는 단지 제품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실제 판매와 거래가 일어나는 전시회"라며 "인도처럼 13억명 규모의 시장에서 제품을 24시간 안에 배송하려면 어떤 유통망이 필요한지, 지속가능성 기준을 어떻게 맞출지, 생성형 AI를 리테일에 어떻게 활용할지 같은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 참가 규모도 확대될 전망이다. 린트너 CEO는 "올해 IFA에는 한국 기업 120~140곳 정도가 참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한국은 AI 가전, 커넥티드 디바이스,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 리빙 기술에서 세계 소비자 테크의 미래를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한-EU 디지털통상협정이 한국 기업의 유럽 진출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라고도 봤다. 한국과 EU가 작년 3월 타결한 이 협정은 디지털 거래와 데이터 이동 관련 규범을 마련해 양측 기업의 온라인 교역 부담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린트너 CEO는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에 길을 내주지 않으려는 긍정적 압박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디지털 통상 환경의 변화도 한국 기업이 유럽에서 유통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