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80 프로 맥스'에 탑재된 기린 9030 칩을 분해해 분석한 결과 칩을 생산한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가 인텔의 최신 칩보다 배선 간격이 더 좁은 칩 구현에 성공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만 수치상의 측정 결과에 비해 실제 성능, 생산 비용 등에선 여전히 인텔, TSMC, 삼성전자와 비교해 4~5년의 격차가 있다는 분석이다.
17일 미국 반도체 분석 업체 세미애널리시스(SemiAnalysis)가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80 프로 맥스'에 탑재된 기린 9030 칩을 직접 분해해 분석한 결과, SMIC의 'N+3' 공정 금속 배선 간격은 32.5나노미터(nm)로 측정됐다. 인텔이 최신 PC용 중앙처리장치(CPU) '팬서레이크'에 적용한 18A 공정(36nm)보다 약 10% 좁은 수치다. 이 수치가 공개되자 온라인에선 '중국이 인텔을 추월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 배선 간격만 좁다… 핵심 지표인 집적도는 절반 수준
전문가들은 배선 간격 하나만으로 공정 수준을 단정 짓는 건 무리라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 공정 수준 비교에서 더 신뢰받는 지표는 1제곱밀리미터(㎟) 면적(손톱 단면의 수십 분의 1 크기)에 집어넣을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다. 트랜지스터는 전기 신호를 켜고 끄며 연산을 처리하는 반도체의 기본 단위로, 같은 면적에 더 많이 들어갈수록 칩 성능과 전력 효율이 높아진다.
이 기준으로 SMIC N+3의 집적도는 1제곱밀리미터당 약 1억2500만개(추정치)로, TSMC의 6나노미터(N6) 공정과 유사하다. 이름이 'N+3'이고 SMIC도 해당 공정을 5나노급으로 소개했지만, 실제 집적도는 6나노에 가깝다는 뜻이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의 라제시 크리슈나무르티 애널리스트는 "N+3은 이전 7나노 공정의 확장판이며, TSMC와 삼성의 5나노 공정에 비해 상당히 뒤처진다"고 했다.
글로벌 최첨단 공정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TSMC의 3나노미터 개선판(N3P)은 1제곱밀리미터당 2억2400만개, 삼성전자의 3나노미터(SF3)는 1억9000만개, 인텔 18A는 2억3800만개다. TSMC가 올해 양산에 들어간 2나노미터(N2)는 3억1300만개로, SMIC N+3과의 집적도 차이가 2.5배에 달한다.
이 같은 차이가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생산 장비의 차이다. TSMC·삼성·인텔은 회로를 웨이퍼(반도체 기판)에 정밀하게 새기는 EUV(극자외선) 장비를 쓴다. SMIC는 미국의 수출 통제로 이 장비를 구입하지 못해 구형 DUV(심자외선) 장비로 같은 효과를 내야 한다. 같은 회로를 5~6차례 반복해 새기는 '다중 패터닝' 기법을 동원해야 하는 탓에 공정 시간이 길어지고 웨이퍼 한 장당 생산 비용이 크게 올라간다.
◇ 칩 성능도 애플, 미디어텍 등과 4~5년 격차
SMIC의 최신 공정에서 생산된 '기린 9030'은 전작 대비 CPU 코어 수를 12~14개로 늘리고, GPU(그래픽처리장치) 성능을 최대 79% 개선하는 등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다. 스마트폰 칩 가운데 처음으로 하드웨어 가속 레이 트레이싱(광원의 반사와 굴절을 계산해 영상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기술)도 탑재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화웨이 자체 발표 기준으로, 독립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글로벌 선두권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기린 9030의 최고 성능 CPU 코어는 애플이 2020년 출시한 M1 칩 코어보다 절대 성능이 57%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GPU 성능은 퀄컴·미디어텍의 최신 플래그십 칩 대비 2.4~3.2배 뒤처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세미애널리시스는 기린 9030의 종합 성능 수준을 2021~2022년에 출시된 플래그십 칩 정도로 평가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아직 제조 공정과 칩 성능에서 격차가 있지만 SMIC는 미국 정부의 장비 제재에도 불구하고 구형 장비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며 "과장됐다는 측면이 있기는 해도 중국의 파운드리 기술 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