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청주공장에서 열흘 사이 두 차례 화재가 발생하면서 사고 원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사고 모두 같은 공장 가스실에서 유사한 공정 중 발생했다는 점에서 업계 안팎에서는 반복 사고의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전 충북 청주 SK하이닉스 4캠퍼스 M15X 가스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앞서 지난 1일에도 청주 4캠퍼스 내 가스실에서 화재가 발생한 바 있다. 두 사고 모두 불소와 질소를 취급하는 공정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2일 사고 당시 작업자 6명이 캐비닛에서 불소와 질소를 혼합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내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서 10여 분 만에 자체 진화됐다. 이 과정에서 작업자 1명이 화상을 입었고, 어지럼증 등을 호소한 직원들은 사내 병원으로 이송됐다. 앞서 이달 1일 사고 때도 화재와 함께 불소가스가 일부 누출되면서 직원 36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이번 사고는 회사가 지난 1일 화재 이후 원인으로 추정된 요소를 제거한 뒤 작업을 재개한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같은 공정에서 열흘 만에 다시 화재가 발생했지만 현재까지 정확한 원인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두 사고 모두 불소와 질소를 취급하는 공정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업계에서는 불소 자체가 화재를 유발했을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현재로서는 가스 혼합 공정이나 설비 이상 등 기술적 원인에 무게가 실린다.
이번 사고는 과거 중국 우시 공장 화재를 떠올리게 한다. 2013년 발생한 우시 공장 화재는 스크러버 설비에서 시작돼 글로벌 D램 공급 차질 우려를 키웠다. 당시 SK하이닉스는 생산 정상화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고, 이후 대규모 안전 투자와 재발 방지 대책을 추진했다.
공통점은 두 사고 모두 웨이퍼를 직접 생산하는 메인 공정이 아닌 가스·배기설비 등 생산을 지원하는 유틸리티 영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다만 우시 화재가 생산라인 가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글로벌 공급망 충격으로 이어진 반면, 이번 청주 사고는 초기 진화에 성공하면서 생산 차질 없이 공장이 정상 가동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일각에서는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증가에 따른 생산 확대와 공장 가동 부담이 안전관리 체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현재 단계에서 이번 화재 사고를 생산 확대나 안전관리 체계 전반의 결함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정 공정 영역의 기술적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이번 사고는 특정 가스 혼합 공정에서 발생한 기술적 문제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회사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진행했고 내부적으로도 대응 조직을 구성한 만큼 설비나 공정상의 구체적인 기술적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반면 소방·안전 분야에서는 같은 공정에서 유사한 사고가 반복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제진수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같은 공정에서 다시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은 최초 사고 원인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거나, 아직 확인되지 않은 위험 요인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원인을 제거했다고 판단한 뒤 작업을 재개했는데도 유사 사고가 반복됐다면 공정 전반을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잇따른 사고에 지역사회와 노동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청주 사업장에서는 올해 들어 화학물질 노출과 누출, 설비 이상, 화재 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민주노총 충북본부는 최근 성명을 내고 "반복되는 사고에도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 관리감독 내용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철저한 원인 조사와 안전 점검을 촉구했다.
최근 사고가 발생한 M15·M15X는 SK하이닉스가 HBM(고대역폭메모리)을 비롯한 차세대 D램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투자 중인 핵심 생산시설이다. 회사 측은 이번 화재로 인한 생산 차질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현재 공장은 정상 가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현재 화재 원인에 대한 감식과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별도로 밝힐 수 있는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