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에 이어 실리콘 캐패시터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AI 반도체 인프라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대형 고객사와 약 1조5000억 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사업화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올해 매출액이 14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최근 글로벌 대형 기업과 실리콘 캐패시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실리콘 캐패시터 사업 확대를 본격화한 이후 따낸 대규모 수주다.
실리콘 캐패시터는 반도체 공정으로 실리콘 웨이퍼 위에 전극·유전층을 미세하게 형성해 용량을 극대화한 초소형·고성능 부품이다.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얇고 작게 제작해 단위 면적당 저장 용량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AI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반도체에 탑재돼 순간적인 전력 변동을 완충하고 노이즈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AI 반도체의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하면서 전력 안정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부상한 만큼, 반도체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실리콘 캐패시터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
그간 실리콘 캐패시터는 높은 기술 진입 장벽과 까다로운 고객 인증 절차로 인해 소수 업체의 과점 시장이 형성돼 왔다. 현재 전 세계에서 양산 능력을 갖춘 기업은 5~6곳에 불과하다. 삼성전기는 MLCC와 기판 사업에서 축적한 초미세 공정 역량을 바탕으로 양산에 성공하며 이 시장에 진입했다.
삼성전기는 실리콘 캐패시터가 MLCC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기존 MLCC가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하는 상호 보완 관계라는 점을 강조한다. 실리콘 캐패시터 개발을 이끈 김원기 그룹장은 "MLCC는 두께를 낮추기 어렵고 기생 인덕턴스(ESL) 측면에서 불리한 환경이 있지만, 실리콘 캐패시터는 높이 제약이 있는 환경에서도 설계 자유도가 높다"며 "일반 시장은 MLCC가, 초고성능 전력이 요구되는 영역은 실리콘 캐패시터가 담당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기는 향후 공급처를 자율주행 시스템·모바일 등 고성능 컴퓨팅 분야로 다변화할 방침이다. 김 그룹장은 "피지컬 AI로 시장 축이 이동하면서 AI 기반 고속 연산과 신뢰성 확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실리콘 캐패시터 수요 확대 속도도 가파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삼성전기의 역량을 집약한 토탈 솔루션으로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