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에는 어느 한 기업도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다."
지난 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만난 테리 차오(Terry Tsao) SEMI 타이완 대표 겸 글로벌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AI 확산으로 반도체 공급망 내 협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전자와 TSMC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TSMC의 핵심 협력사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역시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 진입을 계기로 TSMC와 협력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AI 시대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패키징을 아우르는 공급망 협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SEMI는 전 세계 반도체 소재·장비·부품·제조 기업들이 회원사로 참여하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 협회다. 차오 대표는 AI 확산이 반도체 공급망의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새로운 제품과 새로운 시장이 등장하면서 기업 간 협력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며 "AI 시대에는 더 큰 시장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오 대표는 특히 한국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만 반도체 공급망은 한국 기업을 배제한 적이 없으며 항상 개방적인 구조를 유지해왔다"며 "첨단 패키징과 AI 하드웨어, 소재·장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대만 제조업체들은 특정 공급업체에 종속되기보다 가장 경쟁력 있는 솔루션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첨단 패키징 수요 증가는 한국 소부장 기업들의 사업 기회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AI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이 같은 협력 수요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HBM과 첨단 패키징, AI 서버는 어느 한 기업이 단독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차오 대표는 "현재 AI 시장의 병목은 수요가 아니라 하드웨어 공급 능력"이라며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 로봇 시대로 갈수록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기술력뿐 아니라 얼마나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글로벌 파트너십과 공동 혁신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차오 대표와의 일문일답.
―AI 시대에 한국과 대만의 협력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AI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고 있다. SK하이닉스와 TSMC의 협력이 대표적 사례다. 삼성전자 역시 HBM 공급망에 진입하면서 협력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삼성전자와 TSMC, SK하이닉스를 경쟁 구도로 바라보지만 실제 부품과 제품 수준에서는 이미 많은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대만 공급망은 한국 소재·장비 기업을 배제한 적이 없다. 우리는 공급업체에도 고객에게도 중립적인 모델을 선호한다. 첨단 패키징, AI 하드웨어, 소재, 장비 등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전 영역에서 협력 기회가 있다."
―대만 반도체 산업의 강점은 무엇인가.
"대만 기업들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 집중한다. TSMC는 파운드리, ASE는 패키징에 집중한다. 또한 산업 클러스터와 강한 엔지니어 문화가 빠른 의사결정과 대응력을 가능하게 한다."
―AI 반도체 호황은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그렇다. 지금은 AI 인프라 구축 초기 단계다. 현재 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반도체와 서버 생산 능력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에이전트 AI와 피지컬 AI 시대가 오면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대만 반도체 산업의 최대 과제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다. 두 번째는 기술 리더십 유지다. 마지막은 글로벌 협력이다. 어느 국가도, 어느 기업도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다. 앞으로의 성공은 글로벌 파트너십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