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미뤄왔던 인공지능(AI) 기능의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공개했다. 2년 전 애플은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자체 AI 시스템인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를 공개하며 인공지능 시대를 선언했다. 하지만 애플 인텔리전스의 일부 핵심 AI 기능은 당초 계획보다 늦게 제공됐고, 오류 문제로 일부 기능을 비활성화해야 했다.
애플은 8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소재 본사 애플파크에서 열린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 기조연설에서 음성비서 시리에 구글 제미나이와의 연동을 포함한 차세대 애플 인텔리전스가 적용된 '시리 AI'를 선보였다.
시리AI는 전용 앱을 갖췄다. 애플 측은 "시리 AI는 한층 더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개인 비서 형태로 탈바꿈했으며, 플랫폼 전반에 걸쳐 글쓰기 도구와 비주얼 인텔리전스(시각 지능) 도구를 제공한다"며 "사용자가 메시지·이메일·사진 등에서 원하는 정보를 보다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거의 모든 주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해주며, 앱에서 다양한 동작을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고 설명했다. 시리AI 기능들은 오늘부터 개발자 테스트가 가능하고, 올 하반기 사용자들에게 베타 버전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 화면·사진·메일 맥락 읽는 시리
새 시리는 화면에 표시된 내용과 이미지, 사용자의 이전 대화, 사진, 이메일 등 개인 맥락을 인식한다. 여기에 인터넷 검색을 통한 외부 정보까지 결합해 답변을 생성한다. 기존 시리가 정해진 명령을 수행하는 음성비서에 가까웠다면, 시리 AI는 이용자의 상황을 파악해 필요한 정보를 찾고 앱 실행까지 이어가는 개인 비서형 AI로 바뀐 셈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수키 워터하우스의 공연이 언제야? 관람권은 어떻게 구해?"라고 물으면, 시리는 공연 일정과 표 구매 방식을 찾아 답한다. 이어 사용자가 공연 추첨 신청일에 알려달라고 요청하면 '미리 알림' 앱에 일정을 추가한다.
최근 친구가 문자로 알려준 새 주소를 저장하지 않았더라도 시리가 메시지를 검색해 찾아줄 수 있다. "지난주 목장 여행 때 찍은 사진을 보여줘"라고 요청하면 사진첩에서 조건에 맞는 사진을 골라 보여준다. 기존에는 시리와 나눈 대화가 사라졌지만, 앞으로는 과거 대화 목록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은 아이클라우드를 통해 아이폰·아이패드·맥 등 애플 기기에서 동기화된다.
애플은 받아쓰기와 음성 인식 성능도 개선했다고 밝혔다. 이용자는 시리의 말하는 속도나 감정 표현 정도를 조절할 수 있고, 받아쓰기 과정에서 철자와 구두점 정확도도 높아진다.
◇ 앱 전반으로 확장한 AI… 팀 쿡 마지막 WWDC
애플은 시리 AI를 주요 앱 전반에 적용한다. 항공사에 전화해 비행편을 변경하려 할 때는 통화 내용을 인식한 뒤 이메일에서 예약번호를 찾아 보여준다. 집에 설치된 카메라에서 움직임이 감지되면 장면을 분석해 "택배가 왔다"고 알려주는 식이다. 사파리 웹브라우저에서는 특정 웹페이지의 변경 사항을 감지해 알림을 받을 수도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 기반 '시각 지능' 기능도 강화했다. 카메라로 음식을 비추면 영양 정보를 제공하고, 영수증을 촬영하면 여러 명이 각자 먹은 메뉴값을 나눠 계산할 수 있다. 사진 편집 기능도 확대해 촬영한 사진의 구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AI가 이미지를 확장하거나 다른 각도에서 찍은 것처럼 보정할 수 있도록 했다.
애플은 AI 기능이 이용자 개인 정보를 활용하더라도 개인정보 보호 원칙은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플 수석부사장은 "대부분의 AI 제공업체는 데이터 보호 책임을 사용자에게 떠넘기지만, 애플은 단말형 AI(온디바이스 AI)와 비공개 클라우드를 통해 애플을 포함해 누구도 이용자 데이터에 접근하거나 이를 저장할 수 없도록 차단했다"고 말했다.
애플은 차세대 아이폰 운영체제 iOS27과 '골든게이트'라는 이름의 맥OS도 공개했다. CPU 스케줄러를 적용해 처리 성능을 높였고, 필요한 데이터를 미리 불러오는 방식으로 앱 실행과 사진 불러오기 속도를 개선했다. iOS27은 2019년 출시된 아이폰11까지 지원한다. 자녀의 기기 이용 시간과 연락 대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 여부를 시간대별로 조정하는 보호 기능도 추가됐다.
이번 WWDC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마지막 연례 WWDC였다. 쿡 CEO는 기조연설 영상 말미에 "지난 몇 년간 여러분은 사람들이 놀랍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창조하고, 배우고,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며 고별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쿡 CEO는 "오늘 소개한 놀라운 기능들과 앞으로 선보일 더 많은 기능들을 통해 저는 앞으로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애플은 항상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왔다"고 했다. 오는 9월 쿡 CEO의 후임으로 CEO에 취임할 존 터너스는 이날 기조연설에 등장하지 않았다.
한편, 시장에서는 애플의 이번 발표를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구글 제미나이 연동은 AI 경쟁에서 뒤처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실용주의적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상당수 기능이 2년 전 발표된 내용을 뒤늦게 구현한 성격이 강하고, 이용자들이 기대했던 '새로운 한 방'은 부족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문가들도 신중한 평가를 내놨다. 모펫나탄슨의 크레이그 모펫 분석가는 "이번 업데이트가 획기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파올로 페스카토레 PP포사이트 수석 연구원은 "애플은 시리와 더 넓은 범위의 AI 기능이 단순한 가능성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며 "핵심 과제는 기술적 발전뿐 아니라, AI가 백그라운드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에 실질적인 가치를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