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엔비디아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국은 e스포츠를 탄생시킨 나라입니다."
5일 오후 2시 40분쯤 서울 마포구 T1 베이스캠프 PC방. '페이커' 이상혁이 소속된 e스포츠 구단 T1이 운영하는 이곳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장녀 메디슨 황 엔비디아 수석 이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황 CEO가 입장하자 PC방 안은 순식간에 술렁였다. 게임을 즐기던 이용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고,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휴대전화를 꺼내 촬영에 나선 이용자도 눈에 띄었다.
간단한 인사를 마친 황 CEO는 곧바로 기자들을 지나 PC방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팬들은 연신 셀카와 사인을 요청했고, 황 CEO는 걸음을 멈춰가며 이에 응했다.
약 10분간 팬들과 시간을 보낸 황 CEO는 기다리고 있던 T1 선수단과 만났다. 이날 현장에는 페이커 이상혁을 비롯해 도란 최현준, 오너 문현준, 페이즈 김수환, 케리아 류민석 등 T1 리그 오브 레전드(LoL) 선수단이 참석했다.
황 CEO는 선수단과 인사를 마친 뒤 직접 가져온 지포스 RTX 5090에 사인한 후 페이커의 사인도 받았다. 해당 그래픽카드는 현장 추첨을 통해 한 팬에게 증정됐다. 황 CEO는 "백만달러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며 "내가 갖고 싶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날 방한 일정을 시작한 황 CEO의 첫 목적지는 다름 아닌 PC방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가 엔비디아가 국내 e스포츠 산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보라고 평가한다.
한국은 엔비디아 성장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장으로 꼽힌다. 1990년대 후반 국내에서는 '스타크래프트' 열풍과 함께 PC방 산업이 급성장했고, 게이밍 그래픽카드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당시 황 CEO는 직접 용산전자상가를 돌며 그래픽카드 판매 영업에 나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황 CEO도 앞서 여러 차례 한국의 PC방이 성장에 큰 영향을 줬다고 언급해 왔다. 그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지포스 한국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직접 "페이커"를 연호하며 "PC 게임과 PC방, e스포츠가 없었다면 지금의 엔비디아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가 발명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지싱크, 리플렉스 등은 모두 e스포츠 덕분이고 한국 덕분"이라고 했다.
현재 엔비디아에서 게임 사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과거보다 크게 줄어든 상태다.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엔비디아 전체 매출에서 게임용 GPU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35%에서 지난해 2~10월 기준 8%로 감소했다. 비록 게이밍 GPU를 대신해 데이터센터용 GPU가 엔비디아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황 CEO는 여전히 한국의 e스포츠 문화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낸 셈이다.
T1 선수단과의 만남을 마친 황 CEO는 이날 저녁 홍대입구 인근 삼겹살 집에서 국내 주요 기업인들과 회동할 예정이다. 이번 회동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 등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보틱스, 피지컬 AI 등을 중심으로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