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부품을 집어 올리는 산업용 로봇 팔이 움직이고, 그 뒤로는 인공지능(AI) 서버 랙이 진열됐다. 전시장 곳곳에는 공장 운영 현황과 물류 흐름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디지털 화면이 설치돼 있었다.
4일 대만 타이베이 난강전람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서버가 빼곡히 들어선 컴퓨텍스 2026 전시장에서는 공장과 물류창고, 산업용 로봇을 AI로 연결하는 'AI 팩토리(AI Factory)' 경쟁이 한창이었다. 올해 컴퓨텍스는 단순히 칩 성능을 겨루는 수준을 넘어 AI가 실제 제조 현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로 변모했다.
이 같은 흐름은 개막식에서부터 확인됐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지난 2일 컴퓨텍스 2026 개막 연설에서 2040년까지 AI 전문가 50만명을 양성하고 물과 전력, 토지 등 인프라 공급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10대 신 AI 인프라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AI 수요 확대에 대응해 반도체 제조를 넘어 AI 산업 전반의 기반을 국가 차원에서 강화하며 대만을 글로벌 AI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대만 기업들은 설계부터 생산, 인프라까지 연결된 'AI 제조 생태계'를 앞세워 AI 공장(팩토리) 구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만은 TSMC를 중심으로 반도체 생산, AI 서버, 산업 자동화 기업들이 밀집해 있어 AI 제조 생태계를 구축하기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전시장에서는 AI를 활용한 차세대 제조 인프라가 현실로 구현되고 있었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 폭스콘 부스가 대표적이다. 부스 전면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공장 내부를 가상 공간에 구현한 디지털 트윈이 펼쳐졌다. AI는 생산설비와 물류 흐름, 산업용 로봇 운영 현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했다. 과거 스마트팩토리가 자동화 설비를 연결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AI가 생산 계획과 운영 효율을 분석하고 최적화하는 단계로 진화한 것이다.
전력·산업자동화 기업 델타 역시 AI 기반 스마트팩토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부스에서는 AI가 공장 설비 상태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이상 징후를 예측하는 솔루션이 시연됐다. 에너지 사용량까지 자동으로 최적화해 생산성과 전력 효율을 동시에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어드밴텍과 기가바이트는 AI가 실제 제조 현장에서 작동하는 기반 기술을 선보였다. 공장 내부 카메라와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외부 데이터센터로 보내지 않고 현장에서 즉시 분석해 생산설비와 로봇을 제어하는 '엣지 AI' 플랫폼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이고 지연 시간을 줄여 실시간 통제가 중요한 제조 환경에 적합하다는 설명이다.
이는 올해 컴퓨텍스의 주요 화두인 '피지컬 AI'와도 맞닿아 있다. AI가 단순히 화면 속 정보를 생성하는 단계를 넘어 로봇과 생산설비, 물류 시스템을 직접 움직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이번 컴퓨텍스 기간 동안 AI 팩토리를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황 CEO는 AI를 학습시키는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AI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활용되는 제조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엔비디아는 폭스콘, 어드밴텍, 델타 등 대만 제조 기업들과 협력해 AI 서버와 산업용 컴퓨터, 로봇,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연결하는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 경쟁의 무게중심이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구축에서 제조업 현장의 공정 혁신으로 이동하고 있다"면서 "AI가 실제 산업 현장의 하드웨어를 어떻게 제어하고 생산성을 바꾸는지 증명하는 무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