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무대가 클라우드를 넘어 로봇·공장·가전·자동차 같은 실제 기기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AI에서는 연산·메모리 부족과 함께 전력 공급 문제가 병목으로 떠올랐고, 피지컬 AI는 낮은 전력으로 AI 기능을 구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ST는 AI 데이터센터에서는 전력 병목을 푸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피지컬 AI에서는 센서·마이크로컨트롤러(MCU)·전력반도체를 결합해 기기의 인식·추론·제어 기능을 높이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T)의 연례 테크 콘퍼런스(K-TEC 2026) 참석차 지난 15일 방한한 히로시 노구치 아시아태평양 영업·마케팅 수석부사장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AI 반도체 시장이 ▲전력·에너지 문제 해결 ▲엣지 AI(데이터가 생성되는 기기에서 직접 AI 기능을 실행하는 기술) ▲스마트 모빌리티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봤다. 히로시 노구치 수석부사장은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효율적이고 확장 가능한 전력 공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인이 됐다"며 "AI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기기 가까운 곳에서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흐름도 강해지고 있고, 자동차가 전동화·디지털화되면서 차량마다 들어가는 반도체의 양과 역할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ST는 자동차·산업용 기기·데이터센터·가전 등 다양한 전자 애플리케이션에 제품을 공급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다. 전력반도체·MCU·센서·광학·무선주파수(RF) 기술을 폭넓게 갖춘 곳으로, 세계 20만 곳 이상의 고객사에 제품과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작년 매출은 118억달러(약 17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1억7500만달러(약 2600억원)를 기록했다. 전체 매출의 14.5%를 연구개발(R&D)에 재투자했을 정도로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기업으로 꼽힌다.
◇ AI 데이터센터, 전력 병목 해결이 성장축
히로시 노구치 수석부사장은 AI 반도체 시장의 변화가 결국 '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써서 성능을 내느냐'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봤다. 그는 "전기차·로봇·데이터센터 등은 각기 다른 시장이지만, AI 접목으로 적은 전력으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맞춰져 있다. GPU와 HBM이 더 많은 연산을 처리할수록, 이들 반도체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게 데이터센터 운영사의 고민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는 "막대한 전력을 요구하는 AI는 기존 데이터센터 전력 구조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며 "결국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보내는 과정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로 들어온 고압의 교류(AC) 전기는 건물과 랙, 서버 내부를 거치며 여러 차례 전압을 낮추고 직류(DC)로 바뀐다. 마지막에는 GPU가 쓰는 1V 안팎의 낮은 전압까지 변환돼야 한다. 전기를 바꾸는 단계가 많을수록 손실과 발열이 커지고, 전원공급장치와 배선을 배치할 공간 부담도 커진다.
ST는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방식을 800V DC 기반으로 바꾸면 이런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봤다. 기존 구조에서는 전기를 여러 번 바꿔 서버 안으로 보내지만, 800V DC 구조는 더 높은 전압의 직류 전력을 서버 랙 가까이 보낸 뒤 GPU가 쓰는 전압으로 낮춘다. 전력 변환 단계를 줄여 손실과 발열을 줄이고, 랙 안에 들어가는 전원공급장치와 배선 부담도 해결하자는 게 ST의 접근이다.
ST는 800V DC에서 50V, 12V, 6V, GPU 전력단까지 이어지는 전력 변환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이 포트폴리오는 엔비디아의 800V DC 설계에 맞춰 개발됐다. ST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도 클라우드·AI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 분야에서 수십억달러 규모의 다년간 전략적 협력을 맺었다.
히로시 노구치 수석부사장은 ST가 이런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는 배경으로 실리콘카바이드(SiC)·질화갈륨(GaN)·디지털파워 기술력을 꼽았다. 그는 "SiC 기반 솔루션은 전력 사용량을 줄이고, GaN 기반 솔루션은 전력단의 면적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고 했다. SiC는 800V DC 같은 고전압을 효율적으로 낮추는 데 쓰이고, GaN은 전원장치를 더 작고 빠르게 작동하게 해 GPU 가까이에 배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디지털파워는 전력 변환 과정을 정밀하게 제어해 전기가 여러 단계를 거치며 낭비되는 것을 줄인다.
그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화 솔루션은 새 성장축이 될 것"이라며 "단순히 전력반도체 부품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800V DC 전력 구조 전반에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해 성과를 내겠다"고 했다. ST는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이 올해 5억달러(약 7500억원)를 크게 웃돌고, 2027년에는 10억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 "피지컬 AI 시장, 폭넓은 제품으로 대응"
히로시 노구치 수석부사장은 ST가 전력반도체 중심의 AI 데이터센터 시장 공략과 함께 피지컬 AI 관련 사업 확대도 서두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AI의 다음 물결이 모두 클라우드에 있지는 않다"며 "ST는 엣지 AI를 위한 실리콘을 이미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ST의 피지컬 AI 전략은 기기가 현장에서 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데 필요한 반도체를 한꺼번에 공급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는 "피지컬 AI라고 하면 휴머노이드 로봇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 시장은 공장 자동화·협동·서비스 로봇을 비롯해 팔·손·비전 모듈까지 훨씬 넓다"고 설명했다.
ST는 최근 피지컬 AI 사업 확대를 위해 MCU(STM32N6) 신제품을 내놨다. 또 AI 기능을 넣은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센서와 비행시간측정(ToF)·비전 센서도 선보였다. STM32N6에는 ST가 자체 개발한 신경망처리장치(NPU)를 탑재해 최대 600GOPS(초당 6000억번 연산) 성능을 낸다. MEMS 센서는 기기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ToF·비전 센서는 거리와 공간을 인식한다. 노구치 수석부사장은 "이런 제품을 결합해 고객사의 로봇·산업기기가 주변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동작을 제어하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전기공학 학사,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ST에서 일본 지사장을 거친 뒤 2022년부터 중국을 제외한 APeC 지역의 영업·마케팅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올해 2월 NXP MEMS 센서 사업을 인수했다.
"NXP MEMS 센서 사업 인수로 ST의 자동차 포트폴리오는 상당히 확대됐다. 한국에는 강력한 자동차 산업과 완성차 업체가 있기 때문에 한국 고객에게도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번 인수는 단순히 NXP의 MEMS 제품이 ST에 추가됐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ST가 기존에 보유한 MCU, 센서, 액추에이터, 자동차용 반도체 포트폴리오와 결합해 더 넓은 시스템 관점에서 고객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진행 중인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영업·마케팅 조직이 새 제품을 바탕으로 고객들과 긴밀하게 논의하고 있다."
- 관세와 중동 전쟁 등으로 반도체 공급망 이슈가 중요해지고 있다.
"ST는 실리콘을 제조하는 자체 공장을 보유하고 운영하고 있다. 여러 지역에 제조 거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고객 수요에 대응이 가능하다. 공급망과 물류의 어려움은 반도체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산업이 대응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ST도 물류팀을 운영하고 여러 대책을 통해 고객이 제품을 차질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