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 속에서 국내 반도체 업계의 기형적인 보상 체계가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핵심 인재 이탈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국내 대기업 특유의 압축적·획일적 임금 구조와 호황기 일괄 성과급 제도가 핵심 기술 인력의 동기를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쟁국인 대만과 미국이 시장 논리에 따라 경력과 성과 중심으로 보상을 차등화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직(제조·교대직군) 고졸 신입 사원은 각종 수당과 고정 상여를 포함해 실질 초봉 연 5000만원 이상을 받는다. 업황 부진기에도 고정급 비중이 높아 탄탄한 하방을 보장받는다. 문제는 기본급 체계 자체가 직군·학력 간 격차를 최소화하는 '압축형 구조'라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CL(직급)·연차 중심의 보상 체계를 운영해 직군 간 기본급 격차가 크지 않다. 삼성전자의 경우 석사 학위자는 통상 2년의 경력만 인정받을 뿐, 연구직과 생산직 간 순수 기본급 차이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영업이익 기반의 이익공유 성격으로 성과급 제도가 개편·강화되면서 내부 불만도 폭발하고 있다. 초과이익성과급(OPI) 등 인센티브가 전 직군에 일괄 지급되자, 야간 교대 및 특근 수당 기반이 탄탄한 고연차 생산직의 총보수가 급격히 치솟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노사 합의에 따른 성과급 추산치가 공개되자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는 직군 간 역전 현상으로 들끓었다. 커뮤니티에는 자신을 고졸 사원이라고 소개한 네티즌이 "공부하기 싫어 공고에 갔는데 20대 초반에 내 집 마련을 하게 됐다"라거나 "대졸·석사·박사들보다 성과급을 더 잘 받으니 인생 살맛 난다"는 자축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미래 기술을 개발하는 박사급 핵심 연구 인력은 제한된 기본급 구조 탓에 성과급 체감도가 낮아 역차별 불만이 거세다. 특히 삼성전자는 사업부별 성과급 차등이 심화하면서 비메모리나 DX(완제품) 부문 박사급 인력이 메모리 사업부 생산직보다 총보수가 낮아지는 기형적 현상이 현실화됐다. 블라인드에서는 타 대기업 직원이 "삼성전자 메모리 고졸 성과급이 6억원 터질 때, 완제품 담당 DX 박사는 상생 자사주가 600만원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10년 동안 이런 구조가 유지되면 박사들이 정신과에 많이 다니겠다"고 촌평한 글이 공감을 얻었다. DX 부문과 연구 조직을 중심으로 사기가 최악에 달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해외 경쟁사는 철저한 기술 우대형 차등 보상 구조를 택하고 있다. 대만 TSMC는 직군과 학력에 따라 보상을 칼같이 분리한다. TSMC 생산직의 평균 총보수는 연간 100만대만달러(약 4300만~4500만원) 안팎으로 국내 생산직 초봉과 비슷하다. 그러나 배분 공식은 판이하다. TSMC ESG 보고서에 따르면 직접 생산직의 총보수는 약 27개월치 기본급 규모인 반면, 석사 신입 엔지니어는 약 32개월치 수준이다. 생산직보다 기본급 출발선이 높고 성과급 가중치도 훨씬 크다.
실제 TSMC의 석사 신입 엔지니어 평균 연봉(성과급 포함 총보수)은 220만대만달러(약 9700만~1억원) 수준으로, 생산직의 두 배를 웃돌며 확실한 대우를 받는다. 기본급부터 학사 대비 1.5배 이상 격차를 두는 미디어텍 등 대만 반도체 업계 전반의 기조와도 같다. 대신 생산직은 업황 악화 시 총수령액이 기본급 수준으로 급락해 기업의 고정비 부담을 분담한다.
미국 반도체 업계 역시 철저한 고용 유연성과 직군별 이원화 보상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인텔·마이크론·TSMC 애리조나 공장의 제조 테크니션(생산직)은 시급 중심 구조를 채택해 평균 시급 약 22~30달러, 연봉 환산 시 약 6000만~9000만원 수준을 받는다. 이들은 전사 실적에 연동된 대규모 현금 성과급 수령 기회가 제한되는 대신 높은 고정급을 보장받는다. 반면 인텔과 마이크론 등은 엔지니어 직군에 한해서만 기술 성과에 기반한 인센티브와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확실히 차등 지급하며, 경기 침체 시 생산직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이 자유로운 고용 유연성을 함께 적용한다.
일각에선 글로벌 경쟁사들이 기술 가치에 따라 파격 조건으로 인재를 끌어모으는 동안, 국내 기업들은 내부 눈치보기식 형평성에 무게를 두다가 인재 유출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기술을 우대하지 못하고 인센티브 착시를 유발하는 한국식 보상 체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