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서명한 2026년 임금·성과급 잠정합의안을 두고 사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DS(반도체) 부문, 그중에서도 메모리 사업부에 보상 강화가 집중됐다는 불만이 DX(완제품) 부문 중심으로 확산하면서다. 이에 DX 부문 중심의 삼성전자노동조합동행(동행노조) 조합원 수가 기존 2200명 수준에서 1만2800명으로 증가했다.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를 부결시키려는 DX 직원들이 대거 가입한 것이다. 그러나 교섭권을 쥔 삼성그룹 초기업 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초기업 노조)는 "동행노조에 투표권이 없다"고 못 박았다.
삼성전자 노조는 22일 오후 2시부터 2026년 임금·성과급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 오는 27일 오전 10시까지 진행되는 찬반 투표가 가결돼야 삼성전자 총파업 리스크가 해소된다. 투표권은 노조 명부에 이름을 올린 조합원에게만 부여된다. 조합원 과반수가 투표에 참여하고, 이 중 과반이 찬성하면 잠정합의안이 가결된다. 부결되면 노사는 다시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삼성전자 DX 부문의 한 직원은 "'삼성맨'이란 자부심이 있을 텐데, 서로 '밥그릇' 싸움에만 혈안이 돼 있다"며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 투표권도 없어 '상대적 박탈감'과 '울분'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 "찬반 투표 앞두고 동행노조 가입자 1만명 급증"
잠정합의안에 대한 DX 직원들의 불만은 노조 가입 급증으로 나타났다. 동행노조 조합원 수는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2200명 수준이었지만, 현재 1만2800명으로 급증했다. 동행노조 측이 "21일 오후 2시 전 가입하면 잠정합의안 표결 참여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안내하면서 DX 직원들이 대거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초기업 노조는 이날 동행노조에 공문을 보내 투표권 요청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초기업 노조는 동행노조가 지난 4일 공동교섭단 참여 종료를 통지해 참여 노조 지위를 상실했다고 밝혔다. 이번 잠정합의안이 지난 20일 공동교섭단과 사측 사이에 체결된 만큼, 투표권은 체결 당일 공동교섭단에 참여한 초기업 노조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조합원에만 있다는 것이다.
초기업 노조·전삼노·동행노조는 작년 11월 공동교섭단을 꾸리고 사측과 2026년도 임금 협상을 진행해 왔다. 동행노조는 지난 2월 교섭 결렬이 된 후 꾸려진 공동투쟁본부에 두 노조와 함께 참여해 총파업을 기획했다. 동행노조는 이 과정에서 "특정 분야의 조합원이 아닌 전체 조합원 권익을 위한 안건 발의·요청에도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연대 이탈을 선언했다.
당초 임금 협상에 노조 교섭대표였던 전삼노는 정부 중재로 이뤄진 노사 사후조정 과정에서 과반 노조를 차지한 초기업 노조에 교섭권·체결권 등을 위임했다. 전삼노 관계자는 "잠정합의안 투표권 부여 범위는 초기업 노조가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DX 직원들은 동행노조 가입을 통해 반대 의사를 표출하려 했지만, 실제 표결에는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동행노조는 초기업 노조의 투표 배제 결정을 '말 바꾸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초기업 노조가 사측과 합의한 후 각 조합에 메일을 보내 찬반 투표를 요청하고, 조합원 명부를 21일 오후 2시 기준으로 맞춰 달라고 했다는 게 동행노조 측 주장이다.
동행노조 집행부는 이날 삼성전자 수원디지털시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임금교섭은 사실상 반도체 메모리 사업부 중심의 성과급 교섭으로 변질됐다"며 잠정합의안 부결 운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동행노조는 초기업 노조의 투표 배제 결정과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조합원 대상 찬반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다.
◇ 6억원 vs 600만원… 내부 불만 폭증
잠정합의안의 핵심은 기존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유지하면서 DS 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을 별도로 신설하는 것이다. DS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은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성과의 10.5%로 정해졌다. OPI 재원까지 합치면 DS 직원에게 돌아가는 성과급 재원이 사업성과의 12% 수준이다. DS 특별경영성과급은 세후 전액 자사주로 지급된다. 재원 배분은 부문 40%, 사업부 60% 구조다. 공통조직 지급률은 메모리 사업부 지급률의 70% 수준으로 산정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런 보상 체계가 사실상 메모리 사업부 중심으로 짜였다는 데 있다. 연봉 8000만원 기준 메모리 사업부 직원은 최대 6억원 안팎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적자 사업부인 시스템LSI·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직원도 평균 2억원대를 성과급으로 수령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반면 스마트폰·가전·TV 등을 담당하는 DX 부문과 고객서비스(CSS)사업팀은 600만원 상당 자사주 지급에 그쳤다. DX 부문이 올해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태라 기존 OPI 규모 역시 낮게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잠정합의안 찬반 투표 사내 여론은 '메모리는 찬성, 비메모리는 찬반 혼재, DX는 반대'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승호 초기업 노조 위원장은 찬반 투표 직전 공지를 올리고 "조합원의 투표 결과를 성적표로 삼겠다"며 "가결이 된다면 필요한 부분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조직을 더 구성해 더 나은 노조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결이 된다면 2026년 교섭은 나머지 집행부에 위임하고, 재신임 투표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