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총파업 돌입 약 1시간 30분을 남기고 잠정합의서에 극적으로 서명했다. 조합원 찬반투표를 넘어야 파업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피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총파업 직전까지 몰고 갔던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 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22일 복수의 삼성전자 직원의 말을 종합하면 최 위원장이 처음부터 여론 악화·정부 중재에도 파업 강행을 고집할 정도로 강성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2023년 4월 삼성전자 반도체 뉴스룸 홍보 영상에 출연할 정도로 애사심이 깊고 평범하게 업무를 수행하던 실무자에 가까웠다. 당시 최 위원장과 직간접적으로 업무를 했던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의 한 직원은 "보상 관련 사안에는 비교적 민감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대인관계나 업무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없었다"며 "주변을 챙기고 자기 계발도 꾸준히 하는 모범적인 동료"라고 했다.
최 위원장은 당시 영상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S5 제조에서 시스템 업무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웨이퍼가 정해진 일정과 품질 기준에 맞춰 칩으로 만들어지도록 돕는 일을 수행했던 것이다. 또 고객사가 생산을 맡긴 반도체가 일정한 품질로 나올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운영하고, 실무자 교육도 맡아 진행했다고 한다. 이랬던 직원이 3년 만에 삼성전자를 총파업 직전까지 몰고 간 과반 노조 위원장이 된 것이다.
◇ "사내 게시판서 꾸준히 문제 제기… 변화 없는 회사에 노조 가입"
최 위원장이 본격적으로 노조 활동에 주력한 건 지난 2024년 7월 초기업 노조 홍보국장 직책을 맡은 뒤부터다. 2021년에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에 소속돼 있었지만, 활동 반경은 지금과 비교해 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위원장은 초기업 노조에서 1년여간 홍보국장으로 활동하다, 작년 11월 2대 위원장으로 입후보했다. 이때 소속은 DS부문 메모리 사업부 평택캠퍼스 팹3(P3)라고 명시했다. 그는 입후보 자기소개에서 "직원들이 더 나은 회사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내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며 "단순히 글을 작성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청하게 됐다"고 적었다.
최 위원장은 1991년생이며 초기업 노조 홍보국장을 맡아 회사를 상대로 고정시간외수당·개인연금·귀성여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취지의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공약으로는 정치색 배제, 근로자 대표 지위 확보, 부문별 특성에 맞는 교섭, 조합 운영 투명화, 노동조합 기반 확립 등을 내걸었다. 이런 방향성이 조합원 모집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MZ세대는 과도하게 정치화된 노조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고, 개인 보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최 위원장도 이 점을 잘 알고 공약을 짰을 것"이라고 했다.
◇ 전삼노에 대한 피로감, 임원에 대한 불신, 경쟁사 대비 보상 열위
초기업 노조는 작년 9월까지만 하더라도 조합원이 6000명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달에는 7만5000명 규모로 빠르게 세를 불렸다. 최 위원장이 노조 수장이 된 뒤로 과반 노조를 달성한 것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직원들이 결속할 수 있었던 건 최 위원장이 제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DX(완제품) 소속 직원 이탈이 거세지면서 세가 줄기는 했지만, 조합원 수는 여전히 7만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이런 초기업 노조의 성장은 최 위원장 개인의 역량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한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2020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무노조 경영 폐지 선언 이후, 삼성그룹 전반에 노조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삼성전자에도 여러 노조가 생겼고, 이 중에서 3만5000명의 조합원을 보유했던 전삼노가 최대 노조 지위로 사측과의 교섭 등을 주도해 왔다.
전삼노는 2025년 임금·단체협약에서 사측과 별도 합의해 상임집행부를 대상으로 성과 인상률을 더 높게 책정하는 '이면 합의'나 '내부 소통 부재' 등 다양한 문제를 보였다. 전삼노에 대한 직원들의 신뢰도 하락을 초기업 노조가 최 위원장을 중심으로 파고들면서 조합원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초기업 노조는 작년 10월 전삼노를 제치고 최대 노조 지위를 확보했다.
SK하이닉스와의 보상 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경쟁사가 작년 이례적 규모의 성과급을 받자, 실리적 보상을 중요시하는 MZ세대 구성원 중심으로 불만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자연스럽게 사내에선 전삼노의 대안으로 자리 잡은 초기업 노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최 위원장은 직원들의 불만을 ▲성과급 산식 투명화 ▲성과급 상한 폐지 ▲이공계 인재 유출 방지 등의 언어로 조직화했다.
임원과 직원 사이 보상 차이에 대한 불만도 초기업 노조가 부상한 배경으로 꼽힌다. 2023년 반도체 불황 당시 DS부문은 연간 14조8800억원의 적자를 냈고, 2024년 초 지급된 2023년도분 초과이익성과급(OPI)은 0%로 책정됐다. 2023년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DS부문장을 맡았던 김기남 고문은 172억6500만원, 경계현 당시 DS부문장 역시 24억300만원을 보수로 받았다. 이는 "회사 어려울 때는 직원만 고통을 분담하고, 성과나 보상은 임원이 먼저 가져간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최 위원장의 성과급 제도화·투명화·상한 폐지 구호는 삼성전자 내부 보상 체계가 더 이상 구성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문제 제기로 포장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평택 대규모 집회에서 "(과반 노조는) 우리가 잘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회사가 직원들의 불만에 응답하지 않은 결과"라고 말한 바 있다.
◇ 삼성전자 '성과주의'에 반기… 쟁취 과정 전반서 국민 지탄
초기업 노조는 과반 노조란 지위를 기반으로 삼성전자를 총파업 직전까지 압박, 2026년 임금·성과급 잠정합의안을 끌어냈다. 잠정합의안은 기존 OPI를 유지하되 DS부문 특별경영성과급을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DS 특별경영성과급은 부문 40%, 사업부 60% 방식으로 배분된다. 파운드리·시스템LSI 등 적자 사업부에도 기존 대비 더 큰 보상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
다만 최 위원장은 이를 쟁취해 내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내부에서는 '수평적 소통'이나 '모든 사업부를 아우르는 노조' 등을 주장해 왔던 최 위원장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는 직원들도 많다.
최 위원장은 지난 3월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회사를 위해 근무하는 자가 있다면 명단을 관리해 추후 조합과 협의가 필요한 강제 전배나 해고에 있어 이들을 우선 안내할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파업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동료에게 윽박을 지른 것이다. 지난 18일에는 노조 소통방에 "(현재 상황이) 마무리되면 노조 분리 고민을 해보자"며 "DX 솔직히 못 해 먹겠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업계에서는 최 위원장의 부상은 한 개인의 돌출이라기보다, 삼성전자 내부 보상 체계가 만든 결과라고 해석한다. 성과주의나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에 MZ세대가 정면으로 반기를 들면서 최 위원장이라는 인물이 부각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국민 정서나 파업에 따른 사회적 파장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해 강경 노선을 고집한 점을 두고 국민적 지탄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직원은 "경험이 부족한 최 위원장과 여기에 결탁해 조언이란 명분으로 사측과 갈등의 각을 세우게 만든 법무법인도 초기업 노조를 '국민의 적'으로 돌린 데 한몫했다"며 "MZ세대 직원들의 요구를 꾸준히 묵살해 온 사측도, 큰 숲을 보지 못하고 명분을 잃은 노조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