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20일 오전 삼성전자 노사 간 2차 사후조정이 결렬됐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18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마라톤 협상은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총파업 예고일인 21일을 불과 수시간 앞둔 시점에서 협상 채널이 닫히면서,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가 최대 변수로 부상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가 '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파업 돌입 이후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더라도 파업을 30일간 강제로 멈추는 것에 그칠 뿐, 노사 간 근본적 이견을 해소하는 수단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냉각기 이후에도 교착 상태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인 이유다.
◇ 창사 이래 최대 파업 현실화, 노조 "타협 없다"
양측의 팽팽한 입장 차이로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국가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협상 결렬 이후 정부가 꺼내 들 수 있는 카드는 사실상 긴급조정권뿐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민 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권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 노사간 최종 협상 테이블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부가 선제적으로 긴급조정권 카드를 공개했다. 과거 네 차례의 긴급조정권 발동 사례를 보면 파업 시작 후 발동까지 길게는 78일, 짧아도 나흘이 걸렸다. 이번에는 생산 차질을 빚기 전에 대통령과 정치권, 법원까지 제동 신호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조계는 요건 충족에 이견이 없다는 반응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우리 산업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고 특히 주식 시장에 미칠 위험성까지 고려한다면 긴급조정권 발동 요건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긴급조정권의 법적 근거는 노동조합법 제76조다.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그 규모가 크거나 그 성질이 특별한 것으로서 현저히 국민 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하는 때 발동할 수 있으며,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의 의견을 청취한 뒤 대통령 승인을 받아 결정한다.
하지만 노조는 이 같은 압박에도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최승호 위원장은 "긴급조정권 발동을 시사하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지만 결코 굴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협상 과정에서 사측이 긴급조정권을 언급하자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으로도 전해졌다. 노조가 긴급조정권 발동에 불복해 파업을 이어갈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만큼, 법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긴급조정권 발동 시 30일 냉각기 돌입해 다시 교섭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30일 냉각기'가 시작된다. 노동조합법 제77조는 '관계 당사자는 긴급조정의 결정이 공표된 때에는 즉시 쟁의행위를 중지하여야 하며, 공표일부터 30일이 경과하지 아니하면 쟁의행위를 재개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쉽게 말해, 노사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을 때 국가가 강제로 끼어들어 '일단 30일은 싸우지 마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이 기간 노조는 파업은 물론 태업·집단 연차 사용 등 일체의 쟁의 행위를 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대신 노사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 아래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단 중재가 강제되는 것이지 합의가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30일이 지나도 합의가 없으면 노조는 다시 합법적 쟁의권을 갖게 된다.
과거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2005년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에서는 정부가 파업 나흘째 긴급조정권을 발동했고, 이후 중노위가 기본급 2.5% 인상을 골자로 한 중재를 결정하면서 사태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사태는 성격이 다르다. 이번 분쟁은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과 내부 분열이 이미 노골화된 상황으로, 파업이 멈추더라도 단시간 내에 진화될 사안이 아니다. 30일 냉각기 안에 성과급 구조 개편이라는 본질적 갈등이 해소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노동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30일이 지난 이후에도 타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노조는 다시 합법적 파업권을 갖게 되기 때문에 자칫하면 노사 갈등 구도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이번 파업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결단이 필요하지만 노조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중장기적 리스크뿐 아니라 최악의 선례를 남기게 되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