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컴퓨터가 창립 36년 만에 사명을 '한컴(HANCOM)'으로 변경하고, '한국어 문서 처리 기업'이라는 기존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연수 한컴 대표는 19일 서울 여의도 페어몬트호텔에서 개최한 전략 발표회 '한컴: 더 시프트'에서 "한컴은 에이전트의 운영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소버린 에이전틱 운영체제(OS)'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소버린 에이전틱 OS는 조직 내부의 데이터와 외부 AI 모델, 기존 업무 시스템·권한 체계를 하나의 안전한 환경에서 연결하고 통제하는 통합 AI 에이전트 운영체계다.
한컴은 내달 에이전트 OS의 베타 버전을 선보이고, 하반기 실제 도입 환경에서의 개념검증(PoC)을 거쳐 내년에 정식 출시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최근 AI 시장은 AI가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화'와 데이터 독립성을 중시하는 '주권화, 두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데이터를 외부 클라우드에 무방비로 위임할 수 없는 공공·국방·금융·헬스케어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한컴이 추산한 2030년 소버린 에이전틱 OS의 글로벌 유효시장(SAM) 규모는 약 70억~100억달러(약 10~14조원)다.
한컴은 사명 변경과 함께 '한컴오피스 2024'를 마지막으로 기존의 연식제 패키지 발매를 종료한다. 향후 한컴오피스는 AI 기능 고도화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 형태로 제공된다. 김 대표는 "한컴오피스는 새 버전을 발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AI 기술 플랫폼으로 운영될 예정"이라며 "고객은 더 이상 새 버전의 오피스를 2~3년 주기로 기다리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는 AI 진화가 이뤄지는 순간 자동으로 고객의 시스템에 제공한다"고 했다.
한컴이 AI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가장 큰 이유는 자사 AI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회사의 별도 기준 매출은 1753억원으로 전년(1591억원) 대비 10% 늘었는데, 전체 매출 증가분 162억원 가운데 AI 매출 기여도는 54.6%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AI 패키지 매출은 약 89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5%를 차지했다.
이런 흐름은 올해 들어 가속화되는 추세다. 올해 1분기 매출은 465억원이었고 이 가운데 AI 매출(52억원)의 비중은 11.21%로 1년 전의 0.04%와 비교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지난해 한컴의 영업이익은 509억원, 영업이익률은 29%를 기록했다. 기존에 보유한 20만 고객을 대상으로 AI 패키지를 제공해 고객당 매출(ARPU)을 끌어올리는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고 성장세를 이어갔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한컴은 36년간 축적한 데이터 원천 기술과 20만 고객 자산 등을 내세워 글로벌 소버린 에이전틱 OS 시장을 선점하겠다고 밝혔다. 문서 파싱(구조화된 데이터로 전환)과 비정형 데이터 처리 기술을 바탕으로 각종 문서를 AI가 읽을 수 있는 데이터로 바꾸고, 이를 기업·기관 내부 업무 시스템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전략이다. 실제 한컴이 지난해 9월 오픈소스로 공개한 오픈데이터로더(ODL)는 깃허브에서 2만 스타를 넘기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여기에 특정 거대언어모델(LLM)에 종속되지 않는 '개방형 AX 표준 아키텍처'를 적용해 고객이 원하는 AI 모델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합할 수 있도록 한다. '데이터 주권'을 보장하는 보안 통제 시스템 구축 역량도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컴은 데이터 주권 요구가 큰 유럽 시장부터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김 대표는 "유럽은 전 세계에서 AI 주권 요구가 가장 빠르게 제도화된 시장으로, 소버린 AI 인프라 시장에서 유럽 비중은 34.2%로 1위를 기록했다"며 "최근 유럽 현지 파트너사 3곳과 양해각서(MOU) 체결을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또 올해 연간 매출 목표를 2100억원을 제시해 창사 이래 최초로 매출 2000억원 돌파를 노리고 있다.
김 대표는 "한글과컴퓨터라는 이름은 한국어 문서 처리의 표준을 만든 위대한 출발점이었지만, 이제 한컴이 다루는 영역은 문서를 넘어 데이터로, 컴퓨터를 넘어 AI 에이전트로, 한국을 넘어 글로벌로 확장됐다"며 "한컴은 이미 AI 사업 성과를 숫자로 입증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소버린 에이전틱 OS라는 더 높은 비전에 도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