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인프라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 가운데 인공지능(AI)이 일하는 방식을 재편하고 있다.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링크드인이 인력의 약 5%를 감원하기로 결정한 뒤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中
미국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번에 수백명에서 수천명의 직원을 내보내는 '해고 칼바람'이 불고 있다. 주요 기업은 올해 들어서만 10만명이 넘는 인력을 감축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인건비를 줄이고 있는 것이다.
15일 채용·해고 추적 사이트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Layoffs.fyi)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 테크 업계에서만 10만8700명 이상이 AI발(發) 구조조정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었다. 올 1분기에만 8만1700명이 잘렸는데, 이후 6주 사이에 약 2만명이 추가로 해고된 셈이다. 약 5개월 만에 지난해 감원 규모인 12만4000만명에 근접했다.
기업들은 이구동성으로 "AI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한다"를 대규모 인력 감축의 이유로 내세웠다. 직원을 AI로 대체하고, 감원으로 확보한 자금을 AI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관련 설비 투자에 쓰겠다는 의미다. 이런 흐름은 묻는 질문에 답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비서)의 도입이 확산하면서 가속화되는 추세다.
시스코는 전날 실적 발표에서 전체 인력의 5%에 해당하는 4000여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시스코는 최근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한 158억4000만달러(약 23조원)을 기록해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지만, AI 사업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 인력 감축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척 로빈스 시스코 최고경영자(CEO)는 "AI 시대의 승자는 장기 가치 창출이 가능한 분야에 자원을 손쉽게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이라며 "일부 부문의 인력을 줄이는 동시에 반도체(실리콘), 광학(옵틱스), 보안, 전사 차원의 AI 활용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산하 이력·커리어 중심 비즈니스 소셜미디어(SNS) 링크드인도 같은 날 AI 중심 조직 재편 차원에서 전체 인력의 5%인 약 875명을 내보낸다고 발표했다. 이번 구조조정은 링크드인의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의 성장세를 기록한 가운데 이뤄졌다.
미국 인터넷 인프라 기업 클라우드플레어 역시 1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냈음에도 전체 인력의 약 20%인 1100명을 내보낸다고 밝혔다. 매튜 프린스 클라우드플레어 CEO는 "개발자부터 인사(HR), 재무, 마케팅까지 회사 전반에서 매일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며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앞서 스냅은 전체 직원의 16%인 1000여명,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설립한 핀테크 기업 블록은 40%에 달하는 4000명 이상을 해고했다. 오라클은 올해 전체 인력의 18%인 3만명을,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이달 20일 단행하는 구조조정에서 직원의 약 10% 수준인 8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지난달 말 열린 사내 타운홀 미팅에서 "회사의 주요 비용은 컴퓨팅 인프라와 인력인데, 한 분야에 더 많이 투자하려면 다른 분야에 배분할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직원들에게 전했다. 메타는 최근 업무용 AI 에이전트 개발을 위해 직원들의 마우스 움직임과 컴퓨터 키보드 입력을 추적하는 소프트웨어 설치를 통보해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밖에 아마존, 에픽게임즈, 팔로알토 네트웍스, 워크데이 등 테크부터 게임, 소프트웨어, 보안 기업들까지 대량 해고에 돌입했다. 빅테크에서 시작된 인력 감축은 월마트, 나이키, 에스티로더 등 테크 외 분야까지 확산하고 있어, 미국에서는 AI발 '일자리 쇼크'로 고용 불안이 커지면서 AI를 향한 구직자와 청년층의 반감과 불신이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AI 도입을 확대해 비용을 절감하고 업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기업의 취지와 달리, 사람을 AI로 대체한다고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진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가트너가 이달 초 발간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기업의 약 80%가 인력 감축을 단행했지만, 감원 이후 이들 기업의 실질적인 투자수익률(ROI)이 높아지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트너는 "감원과 ROI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AI를 직원 대체 수단이 아닌 협업 도구로 활용해 생산성을 끌어올린 기업들이 가장 성과가 좋았다"고 했다. 인력 감축으로 AI 투자 등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일자리를 없애는 것만으로는 유의미한 사업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생성형 AI 등장 초기와 비교하면 컴퓨팅 비용이 전반적으로 낮아졌지만, 최근 AI 기업들이 '쓴 만큼 내는' 사용량 기반 요금제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장기적으로 기업들이 인건비보다 AI 도구에 지불하는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앤트로픽은 최근 구독제로 운영하던 AI 모델 '클로드'의 요금제를 사용량 기반의 종량제로 전환했다. AI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기존의 구독제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생성형 AI는 추론할 때마다 토큰(AI 연산 최소 단위)을 소모하면서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인데, 최근 토큰 사용량이 6개월 전과 비교해 약 3~4배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