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휴대폰은 탈착식 배터리 구조였습니다. 배터리 하나를 사용하는 동안 다른 하나를 따로 충전해 두고, 배터리가 닳으면 여분 배터리로 갈아 끼웠습니다. 내년부터 '배터리 교체 설계'를 의무화하는 유럽연합(EU) 규제를 보면, 스마트폰이 과거의 탈착식 배터리로 회귀할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스마트폰의 일체형 배터리 구조가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13일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EU는 '배터리 및 폐배터리 규정'에 의거해 내년 2월부터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스마트폰에 배터리 교체 설계를 의무화합니다. 배터리 교체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소비자들이 기기를 더 오래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친환경 정책입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전자기기에 탑재되는 무게 5㎏ 이하 배터리는 모두 배터리 교체 설계를 갖춰야 합니다. 산업용 배터리나 전기차, 경량 운송 수단(LMT), 시동용(SLI) 배터리만 예외로 뒀습니다. EU는 이 정책으로 기기 수명을 연장해 2030년까지 200억유로(약 35조원)를 절감할 수 있다고 봅니다.
EU에만 적용되는 법률이지만, 대량 생산을 하는 제조사는 거대 단일 시장인 EU가 수립한 표준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EU가 스마트폰 충전 단자를 USB-C 타입으로 의무화하자, 애플이 자사 '라이트닝 포트'를 포기하고 USB-C를 채택한 사례를 보면 EU 정책의 영향력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체형 배터리가 지속되리라는 분석이 대다수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과거처럼 탈착식 배터리 구조로 돌아가지 않아도 교체만 쉽게 만들면 되기 때문입니다. EU 법안은 탈착식 배터리 구조를 강제한 게 아니라, '쉬운 교체'를 의무화한 것이 핵심입니다. 전문 수리 업체가 아닌 일반 사용자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로 배터리를 쉽게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특수 도구가 필요하다면 이를 무료로 제공하라고 했습니다.
IT 매체 테크레이더는 "제조사는 배터리를 탈착식으로 설계하기보다 제품 상자에 몇 가지 분해 도구를 포함할 가능성이 더 높다"면서 "방법만 알면 스마트폰 배터리를 교체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1000회 충전 사이클 후에도 초기 용량의 80% 이상을 유지하는 내구성을 갖춘 고성능 배터리'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애플은 공식 지원 문서에서 "아이폰15 이후 모델은 1000회 충전 사이클 후 원래 용량의 80%를 유지하도록 설계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IT 매체 나인투파이브구글은 "픽셀 8a 이후 출시된 모든 픽셀 기기는 1000회 충방전 후에도 최소 80%의 배터리 용량을 유지하도록 설계되었고, 삼성전자 기기는 일반적으로 더 높은 배터리 용량을 보장한다"면서 "안드로이드 기기가 EU 규정에 저촉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문제는 스마트폰이 아닌 에어팟·버즈 같은 무선 이어폰, 스마트워치·스마트 안경 같은 웨어러블 기기입니다. 극도로 소형화된 전자기기인 무선 이어폰이나 스마트링은 내부 공간이 협소해 배터리 교환 설계를 할 여유가 없고, 다른 소형 웨어러블 기기도 지속적인 피부 접촉과 외부 환경 노출에 견디려면 밀폐형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조사는 주장합니다.
EU는 이 같은 지적에 따라 웨어러블과 일부 전자 의료기기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을 마련, 오는 26일까지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년 2월 발효될 규정을 막을 만큼 시간이 충분한지, 또 개정안이 채택될지 여부도 불확실합니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는 "웨어러블 기기에 사용되는 배터리를 구식 공구에 사용되는 배터리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