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조가 이달 21일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지난 3월 27일 협상이 중단된 지 45일 만에 노사가 성과급 사후조정 절차를 진행한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뉴스1

삼성전자 노사가 11일부터 이틀간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 절차에 돌입한 가운데 이번 협상에서 삼성전자가 경영 원칙으로 삼아온 '성과급 산식 협상 불가'가 깨질지 이목이 집중된다. 사측의 기본 입장은 성과급 제도와 관련한 회사 규정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반면 노조 측은 상한 폐지의 제도화를 고수하며 평행선을 그려왔다.

이번 사후조정을 바라보는 학계, 재계의 우려도 상당하다.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가 해외 반도체 업계에선 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경영진의 재량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여기에 임금 인상률이 아닌 성과급 산정 방식에 노조가 관여하는 이례적 요구가 제도로 굳혀질 경우 삼성 반도체뿐 아니라 국내 기업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성과급 두고 팽팽히 맞서는 노사 입장

11일 삼성전자 노사 사후조정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앞서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이하 초기업노조) 최승호 위원장은 "회사가 (영업이익 15%의 성과급 지급 및 상한 폐지) 제도화에 대해 입장이 없으면 조정이 어려울 것"이라며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번에 진행되는 사후조정은 조정기간 안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뒤에도 노동쟁의 해결을 위해 노동위원회가 다시 중재에 나서는 절차다. 노사가 조정안을 받아들이면 단체협약과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2~3월 조정에서도 합의에 실패했지만, 고용노동부의 설득으로 다시 협상에 나서게 됐다. 사후조정에서도 접점을 찾지 못하면 삼성전자 창사 이후 두 번째 파업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노조는 초과이익성과급(OPI) 산정 방식의 투명화와 상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노조 입장은 인공지능(AI) 메모리 호황으로 반도체 부문 실적이 급증한 만큼, 회사 재량에 맡겨진 성과급 제도를 명확한 산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성과급을 단순한 일회성 보상이 아니라 노사 합의로 정하는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취지다.

반면 삼성전자 사측은 성과급 산식을 협상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성과급은 임금처럼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항목이 아니라 경영성과와 업황, 투자 여력 등을 종합해 회사가 결정하는 보상이라는 논리다. 대신 사측은 6.2% 임금 인상률, 최대 5억원 규모의 직원 주거안정 지원제도, 성과급 재원 확대와 특별포상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상 규모를 키울 수는 있지만, 산정 공식을 노사 합의문에 못 박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 글로벌 기업 기준서 벗어난 노조 요구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의 본질을 '성과급 액수'가 아니라 '성과급의 지위'를 둘러싼 싸움으로 보고 있다. 사측이 성과급 산식을 합의문에 반영하면 향후 매년 성과급이 노사 교섭의 핵심 의제가 될 수 있다. 반도체 업황은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큰 만큼, 특정 시점의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성과급 재원을 공식화하면 향후 투자와 비용 구조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가 특별포상이나 한시적 보상 확대에는 여지를 두면서도 산식 협상에는 선을 긋는 배경이다.

노조의 요구대로 영업이익의 일정 부분을 계약상 명문화할 경우 삼성 반도체의 경영 방침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명현 고려대 교수는 "영업이익의 임직원 자동 배분을 조항으로 제도화할 경우 삼성전자 주주의 잔여청구권을 침해하는 '선배당' 성격을 지닌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삼성전자 주주 단체들도 이를 문제 삼고 있기도 하다.

조 교수는 "해외 기업 사례에서도 노조가 성과급 제도 명문화를 요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일반적으로 성과급과 같은 사안은 회사 경영진의 재량권을 기본으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경영진과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노조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은 반도체 업계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 생태계 전반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