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공동 창업자는 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3명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모르는 애플의 세 번째 공동 창업자는 로널드 웨인(92)이다. 웨인은 중년의 나이로 비디오게임 개발사 아타리(Atari)에서 근무할 당시 신입사원으로 채용된 잡스를 만났고, 이 인연은 애플 공동 창업으로 이어진다. 1976년 4월 세 사람이 모여 애플을 창립한 장소는 웨인의 집이었고, 아이작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 애플의 첫 로고를 그린 사람은 웨인이었다.
공동 창업자 3인은 잡스와 워즈니악이 각각 지분 45%를 보유하고, 웨인이 나머지 지분 10%를 갖기로 했다. 잡스와 워즈니악이 다투면 연장자인 웨인이 중재자 역할을 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웨인은 애플 창립 12일 만에 지분 10%를 단돈 800달러(약 117만원)에 매각하며 애플에서 떠났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웨인은 미국 로런스리버모어국립연구소(LLNL)를 비롯해 여러 기업에서 근무하다 희귀 우표를 판매하는 점포를 열었고, 실리콘밸리와 멀어지며 '애플의 잊힌 창업자'가 됐다.
웨인은 애플 창립 50주년을 맞아 미국 컴퓨터 역사박물관(CHM)이 지난 3월 개최한 행사에서 "800달러에 애플 지분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수십 년 동안 떠돌아다니지만, 사실무근"이라면서 "나는 애플 지분을 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웨인은 최근 조선비즈와 서면 인터뷰에서도 "애플 지분 10%를 매각한 적 없다"면서 "상당한 분량의 증거 자료를 확보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적절한 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자료를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웨인이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웨인과 일문일답.
─1976년 잡스,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립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아타리에서 잡스를 처음 만났다. 당시 잡스는 19세 신입 엔지니어였다. 그는 사무실을 맨발로 걸어 다니곤 했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잡스는 자신이 알아야 할 것들을 내가 알고 있다고 직감했는지, 처음부터 나를 잘 따랐다. 어느 날, 잡스가 내게 와서 자신과 워즈니악이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를 설립하려 한다고 말했다. 워즈니악은 자신의 작업물을 매우 소중히 여겼는데, 잡스는 워즈니악의 회로 설계가 개인이 아닌 회사에 귀속돼야 한다고 설득해 주길 원했다.
워즈니악은 자신의 설계를 아낄 만했다. 그의 기술적 역량은 비범했기 때문이다. 그는 팀 단위의 엔지니어들이 몇 주는 걸려야 만들어낼 회로 구조를 마치 음악가가 즉흥 연주를 하듯 구현했다.
1976년 4월 1일 저녁, 잡스(당시 21세)는 워즈니악(당시 26세)을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나(당시 42세)의 집으로 데려왔다. 나는 워즈니악과 30분 정도 대화를 나눴고, 워즈니악은 회로 설계의 회사 소유에 동의했다. 잡스는 벌떡 일어나 '회사를 설립하자'고 선언했다. 나는 그 방 안에 있는 유일한 어른이었고, 그 자리에서 3쪽짜리 동업 계약서를 작성했다. 애플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애플의 첫 로고를 그렸다.
"잡스가 '빨리 필요하다'며 로고 제작을 부탁했다. 당시 애플의 모든 일은 빨리 처리돼야 했다. 나는 해당 로고가 내가 지금까지 그린 삽화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 앉아 있는 모습을 펜과 잉크로 세밀하게 그렸고, 사과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도록 했다. 마치 사과가 빛의 근원인 것처럼 표현했다. 테두리에는 '애플 컴퓨터 컴퍼니'라는 사명과 함께 윌리엄 워즈워스가 쓴 서곡(The prelude)의 구절인 '뉴턴… 낯선 사유의 바다를 영원히 항해하는 정신… 홀로'라는 문구를 넣었다. 발상은 단순했다. 뉴턴의 사과가 세상을 바꿨고, 우리의 사과가 다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다.
잡스가 1977년 교체한 '무지개 사과' 로고는 더 단순했고, 제작에도 더 적합했다. 무지개 사과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표식이 됐으며, 현재의 단색 사과 로고도 미니멀하고, 자신감 있으며, 우아하고 성숙하다. 나는 애플의 로고 교체에 불만이 없다. 애플은 늘 디자인을 이해하는 회사였다."
─당신이 기억하는 잡스와 워즈니악은 어떤 사람인가.
"잡스는 알기 쉬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대단히 매혹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때로 상당히 냉혹했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 일을 했다. 두 가지가 언제나 일치했는지는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오래 생각해 온 문제다.
워즈니악은 기질 면에서 잡스와 거의 정반대였다. 너그럽고, 개방적이었으며, 비범하지만 겸손했다. 워즈니악은 복잡한 기술적 문제를 일종의 놀이처럼 여겼다. 나는 워즈니악을 대단히 존경한다. 그는 내가 애플에 기여한 점을 너그럽게 평가해 왔고, 나는 그 점에 감사하고 있다."
─불과 12일 만에 애플을 떠난 이유는.
"나는 솔직하게, 동시에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이 이야기에는 지금까지 대중에게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있으며, 나는 오늘 그 전부를 말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렇다. 우선 '12일 만에 떠났다'는 것부터 정확하지 않다. 나는 12일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애플에 관여했다. 나의 퇴사도 그동안 묘사돼 온 것과 다르다. 나는 애플이 어떤 회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이 없어서 떠난 것이 아니다. 재정적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책임에 노출돼 있었기 때문에 떠났다. 그 책임에는 집에서 함께 살던 연로한 어머니도 포함돼 있었다."
애플은 창립 직후 한 컴퓨터 소매점으로부터 애플Ⅰ 컴퓨터 50대 제작 주문을 받았고, 잡스는 이 주문을 이행하기 위해 부품 업체로부터 약 1만5000달러(약 2200만원)어치 부품을 외상으로 조달했다. 애플Ⅰ 판매 대금으로 부품값을 갚는 구조였는데, 자산이 없는 젊은 잡스·워즈니악과 달리 40대인 웨인은 판매 계획이 틀어질 경우 집과 계좌가 압류당하는 걸 우려했다고 한다.
─애플 지분 10%를 800달러에 팔고 떠난 것이 아닌가.
"이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 이 사안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전적으로 잘못됐다. 나는 애플 지분 10%를 팔지 않았다. 동업 관계의 책임 구조에서 내 이름을 제외하는 수정 서류를 제출할 때, 담당 공무원이 '금액을 함께 적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담당 공무원은 800달러를 제시했고, 나는 그 제안에 따랐다. 얼마 뒤 우편으로 잡스가 보낸 봉투 하나를 받았고, 안에는 800달러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편지는 없었고, 설명도 없었다. 수표뿐이었다.
그것은 지분 매각이 아니다. 지분 매각과 관련한 논의가 없었고, 협상도 없었다. 내가 직접 작성한 동업 계약서의 조건에 명시된 '유효한 소유권 이전'에 해당하는 문서도 없었다."
─소유권을 인정받기 위해 후속 조치에 나설 계획이 있나. 그로부터 50년이나 지났는데.
"지금은 이것 이상으로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만, 앞으로 몇 주 동안 이 문제를 주의 깊게 지켜봐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말한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상당한 분량의 증거 자료를 확보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적절한 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자료를 제시할 예정이다."
─지분 매각과 관련한 진위를 떠나, 애플을 떠난 것을 후회하지 않나.
"나는 늘 내가 '축복받은 삶'을 살아왔다고 말해왔다. 그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다만 이제는 그 결정이 전적으로 내가 내릴 수 있는 것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웨인과 애플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신이 세운 애플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애플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한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나.
"애플이 성공한 비결은 잡스가 1976년 당시 기술 업계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실을 꿰뚫어 봤기 때문이다. 제품 안에 들어 있는 공학보다 그 제품을 마주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지난 50년 동안 애플이 내린 모든 결정은 그 직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팟은 더 나은 음악 재생기가 아니라, 음악을 경험하는 더 나은 방식이었다. 아이폰은 더 나은 전화기가 아니라, 정보와 관계 맺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이것은 잡스가 남긴 유산이며,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 유산은 계속 살아남았다.
애플의 또 다른 큰 강점은 기존 제품을 다른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 낡은 것으로 만들려는 의지다. 아이폰은 아이팟을 낡은 제품으로 만들었고, 아이패드는 노트북에 도전했다. 그 본능이 자신의 지위를 방어하려는 여타 기업과 애플을 구분한다."
─애플이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약점이 있다면.
"인공지능(AI) 시대는 잡스 없는 애플에 본능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진정한 시험대다. AI에 대한 애플의 접근법은 신중하다. 프라이빗하고, 통제돼 있으며, 통합적이다. 그것이 지혜인지, 주저함인지는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드러날 것이다.
다른 약점은 애플이 실제로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관한 온전한 진실 사이의 간극이다. 애플은 내가 회사에 기여한 것, 그리고 그 기여가 어떻게 다뤄졌는지에 대해 온전하고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역사를 정직하게 직시하지 못하면, 결국 역사가 쌓아 올린 신뢰도 잃는다. 애플은 지금 그 이야기를 바로잡을 기회를 갖고 있다. 나는 애플이 그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