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스닥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엔비디아가 아닌 샌디스크입니다. 지난해 2월 웨스턴디지털로부터 분사하며 홀로서기에 나선 샌디스크는 지난 6일(현지 시각) 기준 주가가 1409.98달러를 기록하며 연초 대비 430% 가까이 수직 상승했습니다. 과거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사업부와 엮여 저평가받던 '미운 오리'에서, 이제는 인공지능(AI) 서버용 고용량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시장을 지배하는 '핵심 우량주'로 재평가받으며 시가총액 2000억달러(약 290조원) 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샌디스크를 소형 저장장치를 만드는 회사로 치부하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분사 후 샌디스크는 자체 팹 생산 능력과 컨트롤러·펌웨어 설계 역량을 모두 갖춘 '버티컬 통합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했습니다. 특히 주력 제품인 기업용 SSD(eSSD)는 AI 연산 속도에 맞춰 데이터를 읽고 쓰는 '소프트웨어 최적화'가 핵심입니다. 샌디스크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빅테크들에게 단순 부품이 아닌 'AI 스토리지 시스템' 자체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주가 상승의 결정적 트리거는 '신규 비즈니스 모델(NBM)'이라 불리는 다년 공급 계약입니다. 샌디스크는 최근 주요 고객사들과 최대 5년 기간의 초대형 계약 5건을 체결하며 약 420억달러(약 57조원) 규모의 확정 매출을 확보했습니다. 연간 매출 규모에 대한 의구심도 일각에선 제기되나, 전문가들은 이 모델이 가져온 구조적 변화에 주목합니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은 하락기에 재고가 쌓여도 판로가 없어 가격을 후려쳐야 했던 '사이클의 한계'에 갇혀 있었지만, 샌디스크는 장기 계약과 선입금을 통해 불황기에도 물량을 밀어낼 수 있는 '안전판'을 마련했습니다. 데이비드 괴켈러 샌디스크 최고경영자(CEO)가 강조한 "예측 가능한 수익 구조"의 실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모델은 가격 변동 리스크를 고객사에 분산하고 최소 보장 매출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이미 2027 회계연도 생산 물량의 3분의 1 이상이 확정 계약으로 '완판'됐으며, 이는 반도체 하락기가 와도 실적이 꺾이지 않는 '구독형 인프라' 모델로의 변모를 의미합니다. 특히 샌디스크가 경쟁사 대비 높은 멀티플(PER 약 23배)을 받는 이유는 '낸드/SSD 비중 100%의 순수 수혜주'이기 때문입니다. 경기 민감도가 높은 D램과 달리, eSSD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의 가장 절박한 '병목'인 만큼 샌디스크의 사업 구조는 AI 성장의 실질적인 과실을 누리는 핵심 통로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샌디스크가 2026 회계연도 3분기(1~3월)에 기록한 78.4%의 매출총이익률은 일반적인 제조업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수치입니다. 매출 또한 전년 대비 251% 증가한 59억5000만달러(약 8조6000억원)를 기록했습니다. 현재 샌디스크는 "선입금을 내고도 물량을 구하지 못해 줄을 서는" 철저한 공급자 우위 시장을 장악 중입니다. 월가에서는 샌디스크의 내년 주당순이익(EPS)을 168달러선으로 전망하며 최대 주가 4000달러를 가시권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장기적으로 지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낸드플래시 산업은 본질적으로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을 반복하는 사이클 산업의 성격이 강합니다. 향후 공급 확대나 AI 투자 속도 변화에 따라 수익성이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메모리 반도체는 가격 변동에 따라 실적이 크게 흔들리는 구조였지만, 최근에는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장기 계약과 솔루션 중심 전략을 통해 수익 구조를 안정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며 "샌디스크는 이러한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