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 AI(Generative AI) 확산은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재정의하고 있다. '짧고 강한 반등'의 연속이었던 사이클은 이제 '크고 깊은 상승 국면'으로 전환했다. 인공지능(AI) 보편화로 연산과 추론을 지탱하는 칩과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반도체 사이클이 수요·공급의 불일치에서 파생된 불확실성의 산물이었다면, 현재 사이클은 '생성 AI 부상'이라는 산업 재편의 결과다. AI 추론을 이끄는 메모리의 생산능력을 넘어선 데이터센터 증설이 가격 폭등을 유발하는 칩 품귀 현상이 심화하는 것이다.
글로벌 메모리 1위 삼성전자(이하 삼성)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 생산) 1위인 TSMC, 미국 마이크론, 중국 창신메모리(CXMT), 대만 난야테크놀로지 등 반도체 기업의 2026년 1분기 사상 최대 실적은 AI 주도 산업 전환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물경제의 AX(AI 전환)가 진행될수록 반도체 산업은 경기 의존적 사이클을 극복하고, 구조적 이익 축적 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가격으로 57조" vs "구조로 66% 마진"
삼성의 2026년 1분기 매출 133조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은 한국 기업 역사상 전례 없는 실적이다. 43%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은 애플,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비견될 수준이다. 생성 AI 확산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요가 폭증하면서 메모리 사업에서만 영업이익 약 90%인 54조원이 창출됐다. AI 반도체 수요 증가로 D램 생산을 HBM으로 바꾸면서 범용 D램 공급이 급격히 줄었고, 이로 인한 품귀가 막대한 초과이윤으로 이어진 것이다. 실제로 2025년 1월 1.35달러였던 D램 고정 거래 가격은 지난 3월 말 13달러로 1년 새 10배 이상 상승했고, 서버용 최신 D램인 'DDR5 16Gb' 가격도 반년 사이 6배 이상 올랐다. 가격 급등으로 삼성 메모리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70% 이상으로 치솟았다. 반면 설계·맞춤형 생산 기술이 집약된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부문은 적자가 지속하는 등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70%인 TSMC의 순이익은 전년 대비 58% 증가한 5724억대만달러(약 24조원)에 달했고, 매출 총이익률은 66.2%를 기록했다. 제조 기업이 소프트웨어 기업에 가까운 이익 구조를 구현한 셈이다. 삼성과 달리 TSMC는 고성능 컴퓨팅(HPC), 사물인터넷(IoT), 소비자 전자 등에서도 전 분기 대비 10~30% 성장했다. 특히 HPC 부문은 AI 서버와 GPU 수요를 흡수해 성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3㎚(나노·10억분의 1m, 매출 비중 25%), 5㎚(36%), 7㎚(13%) 등 첨단 미세 공정에서 매출 74%를 올린 것이 상징적이다. TSMC는 매년 매출의 약 8%를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해 기술 진입 장벽을 쌓고 있다.
반도체 사이클, 기술에서 자본 투자 주기로
삼성의 이익이 메모리 병목에서 발생한 가격 상승에 따른 초과이윤 성격이 강한 반면, TSMC 이익은 첨단 미세 공정과 패키징을 결합한 구조적 경쟁력의 산물이다. 삼성이 '가격 지대(price rent)'를 누리고 있다면, TSMC는 설계·생산·패키징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시장은 이번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최단 2027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본다. 메모리 신제품 개발 주기에 따라 2년 단위로 반복되던 과거 '붐 앤드 버스트(Boom-Bust)'와 달리 지금은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에 연동돼 반도체 경기 사이클이 구조적으로 길어져서다. 올해는 알파벳(구글),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빅테크의 AI 투자가 전년 대비 69% 증가한 7000억달러(약 1036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2분기 D램 가격도 전 분기 대비 60% 안팎 상승할 것으로 관측된다. 공급 병목은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증설이 본격화하는 2027년 전후에야 완화할 전망이다.
TSMC, 미래 수요 선점 vs 삼성, 보너스 다툼
역대급 호황 속 대응은 엇갈린다. TSMC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최대 560억달러(약 82조9000억원)로 제시했다. 최근 3년간 누적 설비투자액(1000억달러)의 절반 이상을 투입하며 미래 수요 선점 전략을 펼친다. 최첨단 3㎚ 공정을 미국 애리조나주와 일본 구마모토로 확장하고,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에 이은 CoPoS(Chip-on-Panel-on-Substrate) 등 차세대 패키징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설계·제조·패키징을 아우르는 플랫폼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반면 삼성은 내부 갈등으로 글로벌 AI 패권 경쟁 대응 여력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그룹 초기업 노동조합(노조)은 2026년 영업이익 15%(약 45조원)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며 파업을 예고했다. 메모리 호황으로 확보한 이익을 구조적 경쟁력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보너스 다툼'으로 에너지가 분산될 위험이 있다. 블룸버그,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은 경쟁사에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커스텀 메모리로의 시장 재편과 중국 메모리 업체의 추격을 동시에 마주한 상황에서 구조 전환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은 빠르게 줄고 있다. AI는 반도체를 '사이클 산업'에서 '구조 산업'으로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