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공지능(AI)은 클라우드가 중심이었습니다. 지금도 AI 시장에서 클라우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다만 우리 일상의 변화는 결국 '엣지 AI' 주변에서 이뤄집니다. 최근 1년 6개월 사이 더 많은 고객사가 더 많은 엣지 AI를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아미카이 론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수석부사장은 지난달 21일 방한해 조선비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임베디드 프로세싱·디지털광처리(DLP) 광학 반도체 제품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 TI는 전압·온도 등 연속적인 신호를 측정하는 아날로그 칩과 기기 안에서 센서·통신 기능 등을 제어하는 임베디드 반도체 분야 강자로 꼽힌다. TI가 보유한 약 8만개 제품은 10만 곳이 넘는 기업에서 쓰이고 있다. 올해 1분기 매출은 48억2500만달러(약 7조1600억원), 영업이익은 18억800만달러(약 2조6800억원)를 기록했다.
◇ 엣지 AI 시장 확대 맞춰 '임베디드 인텔리전스' 전략 펼쳐
론 부사장은 클라우드 위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던 AI 주도권 경쟁이 점차 기기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봤다. 엣지 AI(데이터가 생성되는 기기에서 직접 AI 기능을 실행하는 기술)를 통한 기기 성능 향상이 일상에서도 체감이 되기 시작하면서 관련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이다. TI는 기기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임베디드 인텔리전스' 제품을 시장에 적기에 공급해 성과를 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론 부사장은 "10~15년 전에는 어떻게 더 많은 기기를 클라우드에 연결할 것인지가 화두였다면, 이제는 각각의 기기가 얼마나 지능적으로 작동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됐다"며 "배터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 얼마나 정밀하고 안전하게 판단하는지가 화두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엣지 AI를 활용하면 기계가 더 지능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고, 사용자 경험도 좋아진다"며 "컴퓨터·스마트폰은 물론 세탁기·냉장고를 비롯해 전동 칫솔까지 점차 더 많은 기계에 엣지 AI가 접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챗GPT·제미나이와 같은 클라우드 기반 AI에서는 메모리·연산 능력이 성능 향상을 저해하는 '병목 현상'으로 작용하고 있다. 론 부사장은 종류는 다르지만 엣지 AI에도 병목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봤다. 그는 "고객사는 각자의 영역에 대한 지식은 매우 많지만, AI 구현 분야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이런 지식의 격차가 엣지 AI 확산의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TI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객사에 엣지 AI 도입 교육과 개발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임베디드 프로세서를 위한 통합 개발 환경(IDE) CC스튜디오(Code Composer Studio)에 더해 최근 엣지 AI 스튜디오(Edge AI Studio)도 신규로 마련했다. 론 부사장은 "AI 알고리즘 전문 지식 없이도 원하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며 "고객이 실제 기기에 엣지 AI를 배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까지 TI의 역할"이라고 했다.
◇ "엣지 AI 실현 위해서는 전성비 높은 제품 선택이 중요"
론 부사장은 엣지 AI 확산을 위해서는 전성비(전력 대비 성능) 칩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한정된 기기 전력으로 연산 등 AI 구현에 필요한 성능을 최대로 내는 게 편의성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론 부사장은 "많은 전력을 쓰는 칩은 열도 많이 내 냉각에도 비용이 발생한다"며 "기기 자원을 대규모로 써서 이뤄지는 AI 연산은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했다.
TI는 고객사의 낮은 전력 사용 요구를 맞추면서도 높은 AI 연산 능력을 제공하는 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신경망처리장치(NPU) 타이니엔진(TinyEngine)이나, 자율주행차용 AI 칩 'TDA5'가 대표적이다.
론 부사장은 "타이니엔진 NPU가 통합된 TI의 마이크로컨트롤러(MCU·중앙처리장치와 관련 모듈을 하나의 칩에 통합해 소형화한 집적회로)는 기존 대비 AI 추론당 지연 시간은 최대 90배, 에너지 사용량은 120배 이상 줄일 수 있다"며 "전력 효율성에 맞춰 개발된 TDA5 칩은 다양한 자율주행 단계에 접목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말했다.
TDA5 칩의 초당 연산 수는 최대 1200조(1200TOPS·1TOPS는 1초당 1조번 연산)에 달한다. 1와트(W)당 24TOPS 연산을 지원한다. 완성차 업체가 400TOPS의 연산을 구현하려면 150와트(W) 이상을 소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TDA5는 50W 미만으로 400TOPS를 실행할 수 있다. 다음은 론 부사장과의 일문일답.
-한국에는 어떤 목적으로 방문했나.
"한국은 혁신적인 고객사가 많아 자주 찾는 시장이다. 고객들이 어떤 기술을 필요로 하는지,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TI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듣기 위해 방문했다."
- 엣지 AI 시장에서 고객들이 가장 많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산업별로 다르다. 이미 엣지 AI의 사용 사례가 수백 가지에 이른다. 적용 분야는 다르지만, 엣지 AI 도입에 따른 효과는 확실하다.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겠다. 이 분야는 이상 징후나 오류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감지하느냐가 중요하다. 태양광 설비에서 배선 두 개가 서로 접촉하고 있는 시간이 1밀리초(ms)씩 늘어날수록 화재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엣지 AI를 적용하면 정확도가 기존 85~90% 수준에서 99%까지 올라갈 수 있다.
보안 시스템도 예가 될 수 있다. 사람이 들어왔을 때는 알람이 필요하지만, 고양이 한 마리가 들어온 경우까지 대응이 필요하지는 않다. 엣지 AI를 활용하면 사람이 들어온 경우와 고양이가 들어온 경우를 구분할 수 있다. 상황에 맞게 기기가 반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최근 중동 전쟁이나 관세 등으로 공급망 안정성도 중요해지고 있다.
"고객에게 좋은 제품을 정해진 시점에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TI는 자체 생산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5년간 생산 능력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계속 투자해 왔다. 텍사스·유타·말레이시아·필리핀 등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어 안정적 제품 공급이 가능하다. 덕분에 AI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에 대응이 가능했다.
관세와 같은 규제는 경쟁사들도 모두 같은 환경에 노출돼 있어, 특정 기업만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규제 환경은 시간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TI는 이런 복잡성에 적응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려고 한다."
- 임베디드 인텔리전스로 고객에게 주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고객이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도록 돕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더 나은 시스템이 무엇인지는 고객이 선택한다. TI는 다양한 제품과 높은 품질, 개발 도구, 교육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