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통신 판매점을 운영하는 A씨는 KT와 KT스카이라이프 유선(인터넷·IPTV) 상품 영업 정책 때문에 한숨을 쉬었다. KT 유선 가입자를 KT스카이라이프로 옮기면 수수료가 줄고, 반대로 KT스카이라이프 유선 가입자를 KT로 유치하면 수수료 지급 대상에서 빠지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A씨는 "모회사인 KT와 자회사인 KT스카이라이프 이용자끼리는 이동하지 못하게 서로 막는 것 아니냐"면서 "양사 가입자에 대해 영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같은 조치"라고 하소연했다.
KT와 KT스카이라이프가 유선 인터넷·IPTV 가입자를 서로 유치하는 경우 유통망 수수료를 줄이거나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정책을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KT그룹 내 계열사 간 고객 이동을 영업망 단계에서 제한하는 효과가 나타나면서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하고, 경쟁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KT는 자사 유선 상품으로 이동한 가입자 가운데 KT스카이라이프에서 넘어온 고객을 수수료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지침을 전국 대리점에 내렸다. KT 대리점들은 하위 영업 조직인 판매점(통신 3사 모두 취급)에 이 같은 정책을 공유했다.
유선 인터넷·IPTV 시장에서 판매점 수수료는 소비자 혜택과 직접 연결된다. 업계에 따르면 판매점이 다른 통신사 유선 가입자를 1명 유치하면 통상 40만~60만원 안팎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 돈은 고객에게 제공하는 현금성 페이백이나 사은품 재원으로 쓰인다. KT와 KT스카이라이프 간 이동 고객에 대한 수수료가 줄면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도 함께 줄어들 수밖에 없다.
◇ KT 문건에 "스카이라이프 전환 건 제외"… 원스톱전환도 빠져
조선비즈가 입수한 KT 유선 영업 정책 문건에는 KT스카이라이프 전환 건이 수수료 지급 제외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 '유무선 결합 기본 운영 가이드'와 '유선 기본 운영 가이드'에는 각각 'Skylife 단품전환건' 'skylife 단품전환 건'이 수수료 지급 제외 대상으로 적혀 있었다. 문서에는 '경고: 본사 정책 임의 조정 엄금'이라는 문구도 포함됐다.
KT의 '인터넷 원스톱전환 활성화 정책' 문건에서도 같은 구조가 확인됐다. 이 문건은 원스톱전환 대상 사업자로 SK텔레콤·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LG헬로비전·딜라이브·CMB를 적시하면서, 제외 대상에는 'Skylife/HCN'을 별도로 명시했다. 경쟁사 전환 고객은 지원 대상에 포함하면서 KT 계열사인 KT스카이라이프와 HCN 전환 건은 정책 대상에서 뺀 것이다.
인터넷 원스톱전환은 이용자가 기존 사업자 해지 절차를 따로 밟지 않아도 신규 사업자를 통해 해지와 가입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절차가 지원되지 않으면 KT와 KT스카이라이프 유선 가입자 간 이동은 다른 사업자로 옮길 때보다 번거로워질 수밖에 없다.
업계 일각에서는 고가 상품 중심의 KT가 상대적으로 저가 상품을 판매하는 KT스카이라이프로 고객이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두 회사가 같은 KT그룹 계열사라는 점에서 계열사 내부의 가격 경쟁을 줄이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100Mbps 인터넷과 기본형 IPTV 결합 기준으로 KT스카이라이프는 KT 본사 상품보다 월 4000~1만2000원가량 저렴하다.
◇ 스카이라이프도 KT 고객 비중 높으면 수수료 불이익
KT스카이라이프는 자사로 이동한 유선 가입자 가운데 KT에서 넘어온 고객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아야 '영업성장수수료'를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KT스카이라이프가 대리점에 지급하는 영업성장수수료는 KT에서 넘어온 유선 고객 비율이 7% 이하이면 건당 최대 1만5000원, 7~12%이면 건당 최대 1만3000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KT 고객 비율이 12%를 넘으면 해당 수수료를 받기가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 특정 대리점이 유선 가입자 500명을 유치했을 때 KT에서 넘어온 고객이 60명을 넘지 않으면 650만원, 35명을 넘지 않으면 750만원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반대로 KT 고객 유입 비중이 기준을 넘으면 대리점 입장에서는 수백만원 상당의 수수료를 놓칠 수 있다. 대리점이 자체 영업도 하지만 여러 개의 하위 판매점으로부터 가입자를 유치하기 때문에 한 달에 유치하는 가입자 규모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백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KT스카이라이프 본사 지침을 받은 일부 대리점은 판매점에 "KT 유선 고객을 1명 유치하면 지급 수수료에서 10만원을 차감한다"는 식으로 변형된 정책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정책 시행 이후 KT IPTV 고객이 KT스카이라이프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KT와 KT스카이라이프 사이의 고객 이동이 유통망 단계에서 제한되는 셈이다. 통신업계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 간 고객 뺏기 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정책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 소비자 선택권 제한 논란…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도
KT와 KT스카이라이프가 유통망 수수료 정책을 통해 계열사 간 고객 이동을 사실상 제한했다면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나 거래상 지위 남용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판매점에 수수료 차감 등 불이익을 줘 특정 고객 유치를 억제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어서다.
전기통신사업법상 논란도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서비스 가입을 제한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이용자별로 부당하게 차별 제공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수수료 차등 지급이 사은품이나 페이백 축소로 이어질 경우 KT와 KT스카이라이프 고객이 서로 이동할 때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줄어드는 만큼 소비자 차별 문제로 번질 수 있다.
신현두 한국소비자협회 대표는 "KT와 KT스카이라이프가 별도 법인이라 하더라도 유통망에서 두 회사 간 고객 이동을 사실상 막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면 소비자 선택권 침해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수수료 정책이 고객 혜택 축소로 이어지는지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