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 뇌병변 장애가 있는 양용석(76)씨가 보조 로봇 '엔젤슈트 H10'을 착용하고 20일 화성종합경기타운 광장에서 열린 '아름다운 동행, 함께 걷는 봄길' 행사에 참가해 걷고 있다./정두용 기자

"밖에서 뚜벅뚜벅 걸으니 얼마나 좋아요. 개운하네요."

심한 뇌병변(중증·기존 1~3급) 장애가 있는 김완미(47·여)씨는 얼굴에 묻은 빗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1㎞ 남짓한 거리를 걷고 난 뒤 그의 얼굴은 상쾌해 보였다. 비가 내리고 찬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였지만 "로봇이 양쪽 발걸음의 균형을 잡아줘 끝까지 걷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옆에서 보조를 맞춰줬던 직원이 있었지만, 그는 대부분의 구간을 스스로 걸어 완주했다.

경기 화성특례시는 20일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아르딤복지관과 함께 '아름다운 동행, 함께 걷는 봄길' 행사를 화성종합경기타운 광장에서 개최했다. 비장애인·장애인이 4인 1조로 각자 화성종합경기타운을 한 바퀴(1050m)씩 돌아, 장애인의 날(4월 20일)에 맞춰 총 4200m를 완성하는 행사로 기획됐다. 주최 측은 다만 행사 도중 비가 내리는 정도가 심해지자 한 바퀴를 함께 도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날 행사에는 비장애인·장애인 약 1000명이 함께했다. 스스로 걷기 힘든 장애인도 '웨어러블 로봇'의 도움을 받아 행사에 참여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김씨를 비롯해 이병식(64·남)씨, 양용석(76·남)씨가 엔젤로보틱스의 엉덩관절(고관절) 보조 로봇 '엔젤슈트 H10'을 착용하고 목표했던 1㎞ 구간을 완주했다.

중증 뇌병변 장애가 있는 이병식(64)씨가 보조 로봇 '엔젤슈트 H10'을 착용하고 20일 화성종합경기타운 광장에서 열린 '아름다운 동행, 함께 걷는 봄길' 행사에 참가해 걷고 있다./정두용 기자

이들 모두 행사 참여에 앞서 H10을 기반으로 한 재활 운동을 3~6개월간 진행했다. H10에 탑재된 인공지능(AI)은 7개의 센서를 통해 수집된 정보를 빠르게 처리, 사용자의 의도·상태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필요한 부위에, 필요한 만큼의 힘'을 보조한다. 뇌졸중·뇌성마비와 같은 신경계 질환을 겪고 있거나 인공관절 수술(THA·TKA)을 받은 환자가 사용하면 재활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의료 기기 인허가도 받았다. 근감소증 환자도 재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엔젤로보틱스는 회복·유지기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H10과 급성·회복기 환자에게 적합한 '엔젤렉스 M20'을 출시한 상태다.

H10은 전용 앱인 '엔젤라 프로'를 통해 체계적인 재활 훈련을 진행할 수 있다. 보행 주기를 구성하는 입각기(발이 지면에 닿아 체중 지지)와 유각기(발이 지면에서 떨어져 전방으로 이동) 비율이나, 관절의 각도 등을 정밀하게 측정해 앱을 통해 분석 결과를 보는 식이다. 이런 정보는 환자별 맞춤형 재활을 진행하는 데 활용된다.

경증(기존 4~6급) 뇌병변 장애가 있는 양씨는 이날 H10을 착용하고 지팡이를 짚었지만, 1㎞를 뚜벅뚜벅 완주하는 내내 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기기를 입지 않았으면 평소 이 거리를 걷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중증(기존 1~3급) 뇌병변 장애가 있는 이씨는 "H10을 6개월 정도 써봤는데 근력이 많이 붙은 걸 느꼈다"며 "재활을 열심히 한 덕분에 걷기 행사에도 자신감을 갖고 참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직접 H10을 착용하고 걸어보니 고관절 부분의 지지가 이뤄지는 게 느껴졌다. 힘을 빼고 걸으면 로봇이 허리와 엉덩이 부분을 받쳐줘 안정적이었다. 점진적인 부하를 가해 재활을 돕는 기능을 켜면 마치 물속을 걷는 것과 같았다. 엔젤로보틱스 관계자는 "H10은 환자가 일상으로 하루라도 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이라며 "M20 제품은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해, 걷기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H10 사용자를 지원하고자 나왔다"고 말했다.

엔젤로보틱스 제품 외에도 하이퍼쉘·위로보틱스의 보행 보조 로봇을 착용한 비장애인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하이퍼쉘·위로보틱스 제품 판매를 대행하는 기업 세다(SEDAA)의 김성균 부장은 "비장애인·장애인이 함께 걷는 취지에 공감해 직원들과 하이퍼쉘·위로보틱스 제품을 착용하고 행사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학생 프레임러닝 선수인 신지원(18)양이 20일 화성종합경기타운 광장에서 열린 '아름다운 동행, 함께 걷는 봄길' 행사에 참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정두용 기자

장애인 재활체육 사회적 기업 '좋은운동장'이 제공한 프레임러닝을 탑승하고 행사에 참가한 이들도 있었다. 패럴림픽 정식 종목인 프레임러닝은 뇌병변·운동기능 등의 장애가 있는 이들이 3륜 프레임에 몸을 지지하고 발로 땅을 밀며 달리는 운동이다. 국내 유일의 학생 프레임러닝 선수인 신지원(18·여)양도 보호자와 함께 걷기 행사를 완주한 후 "사람들과 함께 하니 구름을 걷는 것 같고 좋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신양은 중증 지적 장애가 있다.

행사를 주최한 아르딤복지관의 관장인 도선 스님은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며 "배려를 넘어 함께 동행하는 가치를 나누고자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엔젤로보틱스 관계자는 "장애인분들이 로봇의 도움으로 직접 대지를 밟으며 걷는 즐거움을 느끼고, 보행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자리"라며 "더 많은 장애인이 제약 없이 사회와 소통하며 주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