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디자인 산업의 구조 자체를 바꾸면서, 경쟁 관계에 있던 어도비와 피그마가 동시에 흔들리는 '동병상련' 상황입니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시장을 나눠 갖던 두 기업이 같은 이유로 주가가 급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디자인 작업 전 과정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가 투자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어도비와 피그마는 원래부터 디자인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정면으로 경쟁해온 관계입니다. 어도비는 포토샵·일러스트레이터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크리에이티브 툴 강자였고, 피그마는 협업 기반 사용자 인터페이스(UI)·사용자 경험(UX) 디자인 영역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며 대항마로 떠올랐습니다. 실제로 어도비는 2022년 약 200억달러 규모로 피그마 인수를 추진했지만, 미국과 유럽 당국의 반독점 규제에 막혀 2023년 결국 무산된 바 있습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현지시각) 앤트로픽의 최고제품책임자(CPO)인 마이크 크리거는 피그마 이사회에서 전격 사임했습니다. 같은 날 앤트로픽은 차세대 모델 '클로드 오퍼스 4.7'을 출시했습니다. 이 모델은 웹사이트와 UI, 프레젠테이션 등 다양한 결과물을 자연어 기반으로 생성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으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역량과 비전 기능, 인터페이스·문서 생성 등 전문 업무 영역에서의 성능이 개선된 것이 특징입니다.

소식이 전해진 직후 어도비와 피그마 주가는 동반 하락했습니다. AI 기업이 기존 디자인 소프트웨어 영역에 직접 진입해 대체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AI가 SaaS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이른바 'SaaS 종말(SaaSpocalypse)' 시나리오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도비와 피그마의 경쟁 구도가 무너지고, 두 기업이 동일한 리스크에 동시에 노출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이미 주가는 이러한 불안을 선반영하고 있습니다. 어도비 주가는 올해 들어 약 25~30% 하락하며 연중 저점 수준까지 내려왔고, 피그마는 2025년 기업공개(IPO) 당시 고점 대비 80% 이상 급락했습니다. 한때 600억달러를 넘겼던 피그마의 기업가치는 현재 100억달러 안팎으로 쪼그라든 상태입니다. 두 기업 모두 매출 성장 자체는 유지되고 있지만, 시장은 실적보다 "이 사업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우려가 커지는 이유는 생성형 AI가 디자인 '툴'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디자인 '과정' 전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디자이너가 화면을 직접 구성하고 반복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이제는 자연어로 요구사항을 입력하면 UI 설계, 사용자 흐름, 인터랙션, 프론트엔드 코드까지 한 번에 생성됩니다. 즉, 아이디어→디자인→프로토타입→개발로 이어지던 단계가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되면서, 숙련 인력과 전문 소프트웨어에 기반했던 기존 산업 구조가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입니다.

구글도 최근 AI 디자인 도구 '스티치(Stitch)'를 대폭 업데이트하며 '바이브 디자인'을 전면에 내세우자, 피그마 주가는 하루 만에 약 12% 급락했습니다. 설계 과정을 사람이 직접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 공개되면서 투자심리가 빠르게 위축된 것입니다.

어도비는 고마진 사업인 스톡 이미지 부문이 AI 이미지 생성 확산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며, 자체 생성형 AI '파이어플라이'를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기존 사업의 타격을 완전히 상쇄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여기에 18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샨타누 나라옌 최고경영자(CEO)의 퇴임까지 겹치면서 전략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입니다.

피그마 역시 협업 기반 UI·UX 디자인 툴이라는 강점을 갖고 있었지만, AI가 설계와 구현을 동시에 수행하는 환경에서는 협업 자체의 필요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스타트업과 소규모 팀에서는 AI를 활용해 디자인과 개발 초기 단계를 동시에 처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이제는 어도비와 피그마의 경쟁이 아니라, 생성형 AI와 기존 소프트웨어 간의 구조적 충돌이 시작됐다는 점입니다. 경쟁사였던 두 기업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변화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재편 신호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