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서버 수요 폭증으로 기업용 SSD(eSSD) 시장에서 이례적인 가격 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AI 인프라 확대의 수혜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넘어 낸드플래시까지 전이되면서, 일부 고사양 제품 가격이 승용차 한 대 값에 맞먹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삼성전자의 TLC 기반 eSSD 신제품 PM1753./삼성전자 제공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는 낸드플래시를 이용한 저장장치로, 자기 디스크를 돌리는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보다 속도가 수십 배 빠르고 전력 소모가 적어 대규모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해야 하는 AI 서버의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스토리지 솔루션 기업 Vdura가 집계한 '플래시 변동성 지수(Flash Volatility Index)'에 따르면, 30테라바이트(TB)급 TLC(트리플 레벨 셀) 기반 엔터프라이즈 SSD 가격은 작년 2분기 약 3000달러(약 446만원) 수준에서 올해 1분기 1만7500달러(약 2400만원) 안팎까지 상승했다. 1년 사이 가격이 약 5배(472%) 가까이 폭등한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 1분기 기업용 SSD 가격이 전 분기 대비 53~58% 상승하며 역대 최대 상승폭을 기록한 데 이어, 올 2분기에도 낸드플래시 계약 가격이 70~75% 추가 상승하는 '메모리 쇼크'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한 수급 불균형을 넘어 AI 중심으로 스토리지 시장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AI 서버는 기존 범용 제품보다 고용량·고성능 SSD를 집중적으로 요구하며, 제한된 낸드 생산 역량이 고부가 제품으로 쏠리면서 전체 시장 가격을 끌어올리는 구조가 형성됐다.

여기에 HDD 공급 여건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장기 보관용 '콜드 데이터' 수요는 늘고 있으나, HDD 시장의 성장성 둔화로 공급 확대가 지연되면서 스토리지 전반의 조달 부담이 커졌다. 최근 24TB HDD 가격은 불과 수개월 만에 약 74만원에서 100만원선까지 치솟았다. SSD와 HDD의 용량 대비 가격 격차가 22.6배 이상 벌어지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두 매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스토리지' 전략이 다시 확산되는 흐름도 감지된다.

이는 글로벌 eSSD 시장 상위권을 형성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강력한 호재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약 33.8%, SK하이닉스(솔리다임 포함)는 30.2%의 점유율을 바탕으로 고부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자회사 솔리다임은 초고용량 제품 판매 확대를 발판으로 지난해 연간 약 1조391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궤도에 진입했다. 증권가에서는 올 2분기 낸드 부문 영업이익률이 60%를 상회하며 HBM의 수익성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클라우드서비스사업자(CSP)와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은 비용 부담이 커졌다. 스토리지 도입 비용 급등으로 인프라 투자 계획을 재조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향후 클라우드 서비스 요금 인상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AI 서버 수요가 지속되는 한 고용량 SSD 중심의 공급 부족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낸드 생산 확대에 물리적 시간이 필요한 만큼 가격 변동성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