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제조사가 아닌 기술 회사로 정체성을 바꿔야 합니다."

취임 3년 만에 연간 흑자 전환이란 성과를 낸 정철동 LG디스플레이 사장은 공식 석상에서 이런 취지의 말을 자주 했습니다. 기술 중심 회사로 전환해 원가 절감·품질 차별화를 이뤄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는 겁니다. 이런 전략에 최근 두드러진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됩니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는 작년에 2조2114억원을 연구개발(R&D)에 쏟아부었습니다. 연간 매출의 8.6%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술 확보에 쓴 것입니다. 작년 신규로 등록한 특허는 4073건(국내 1817건·해외 2256건)으로 집계됐습니다. 특허 등록률은 95% 이상을 유지했고, 작년 말 기준 누적 등록 특허 수는 7만335건(국내 3만1645건·해외 3만8690건)으로 집계됐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기술 개발 성과를 품질 향상이나 생산 효율성 개선 등에 활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수익이 될 수 있도록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뉴스룸을 통해 "연간 로열티(특허 사용료) 수익은 매년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핵심 공정과 구조 설계에 대한 특허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작년 3분기 누적 기준 특허 로열티는 999억원입니다. 2025년 사업보고서에는 특허 로열티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지만, 이를 포함한 '기타 매출'이 2425억원으로 나타났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연간 특허 로열티 수익 규모는 1100억~1200억원 정도로 추산할 수 있습니다.

◇ 대형 LCD 패널 사업 철수… 특허 제공 사업 확대

LG디스플레이의 특허 로열티 수익 규모는 2022년 124억원에서 2023년 163억원, 2024년 606억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의 특허 로열티 수익이 늘어나고 있는 배경 중 하나로 작년 4월 대형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사업 철수를 꼽습니다. 경쟁사에 대형 LCD 관련 특허를 제공해도 시장이 겹치지 않아 축적한 기술을 통한 새로운 수익원 마련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겁니다. LG디스플레이는 대만 한스타디스플레이·AU옵트로닉스·이노룩스 등과 맺은 LCD 관련 특허 상호실시권 설정 계약을 유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LG디스플레이는 사업 구조를 LCD에서 수익성이 높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하고 있는데요.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의 저가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전체 매출 내 OLED 비율은 2020년 32%에서 2022년 40%, 2024년 55%로 높아졌고, 작년에는 61%로 확대되면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작년 말 기준 면적당 판가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49% 상승한 1297달러(약 184만5200원)를 기록했습니다. LG디스플레이는 이를 기반으로 2024년 손실 규모를 전년 대비 2조원 축소하고, 작년에 다시 1조원 정도 개선하는 성과를 냈죠. LG디스플레이의 작년 연간 영업이익은 5170억원으로, 4년 만에 연간 흑자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LG디스플레이 IR 자료./LG디스플레이

◇ OLED 기술 방어엔 적극적

LG디스플레이가 LCD 분야에서 타사에 제공하는 특허 사용권 범위를 확대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핵심 매출원인 OLED 사업에서는 여전히 기술 주도권 유지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작년 6월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 티엔마가 자사 LCD·OLED 관련 특허 7건을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한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티엔마가 LG디스플레이의 특허 기술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10년 넘게 이어진 라이선스 협상을 지연·거부하자 법적 대응에 나선 겁니다.

티엔마는 이에 핵심 특허 1건에 대해 미국 특허심판원(PTAB)에 무효심판(IPR)을 청구하며 반격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미국 법원은 티엔마의 심판 청구를 각하했습니다. 별도 심리 절차 없이 해당 특허에 대한 LG디스플레이의 권리가 유지된다는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 AI 도입으로 기술 개발 효율성 증대

LG디스플레이는 OLED 분야를 중심으로 기술 개발 효율화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플랫폼 '피직스네모'를 도입해 자체 디지털 트윈 패널툴(DPS)을 개발한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공간을 가상에 정밀하게 구현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OLED 패널 생산 과정에서는 다양한 측정값이 데이터로 처리되고 있는데요. 이런 제조 데이터를 가상 공간에 입력해 실제 공정을 변화시키지 않고도 결과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DPS에는 OLED 제조의 실제 물리적 계측 과정을 학습한 AI 모델이 접목돼 있습니다. 이를 통해 가상 실험의 정확도와 처리 속도를 대폭 높였죠. 엔비디아는 자사 플랫폼을 활용해 제조 효율성을 높인 LG디스플레이를 지난달 열린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GTC) 2026 발표 무대에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작년 8월 기준 인공지능 전환(AX) 성과./LG디스플레이

◇ 풍부한 인재 장점… "차별화 기술로 격차 수성해야"

정철동 사장이 추구하는 '기술 중심 회사' 비전을 달성할 '맨파워'를 갖춘 것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세계 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는 지난달 최현철 LG디스플레이 사업부장에게 '칼 페르디난드 브라운상'을 수여했는데요. 산업 근간 기술을 개척한 이들에게만 수여돼 '디스플레이 업계 노벨상'이라고도 불립니다.

최 사업부장은 탠덤(Tandem) 등 멀티 스택 구조의 고효율 패널을 개발, OLED가 TV·고성능 IT·차량용 등으로 확장할 수 있게 만든 성과로 수상했습니다. 탠덤 OLED는 유기발광층을 수직으로 층층이 쌓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패널인데요. OLED 소자에 가해지는 에너지를 분산시켜 기존 1개층 구조보다 높은 밝기와 수명이 긴 특징을 지닙니다. LG디스플레이는 탠덤 OLED와 같은 고부가가치 기술 분야에서 특허 출원·등록 수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현철 LG디스플레이 사업부장(왼쪽)과 양준영 LG디스플레이 선행기술연구소장./LG디스플레이

이와 함께 양준영 LG디스플레이 선행기술연구소장이 SID 석학회원으로 선임되기도 했습니다. SID는 매년 역대 석학회원의 추천과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연구 업적이 뛰어난 최상위 0.1% 내 인물을 석학회원으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SID 측은 양 소장을 석학회원으로 선정하며 "스트레처블·롤러블 등 여러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개발을 주도해 왔다"며 "올레도스(OLEDoS, 초소형·고해상도 OLED로 확장현실 기기 등에 쓰이는 패널)를 비롯한 다양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에 크게 기여했다"고 했습니다.

정철동 사장은 지난 2월 타운홀 행사인 'CEO 온에어'를 열고 "4년간의 적자에서 벗어나 작년에 턴어라운드를 이룰 수 있었던 건 모든 임직원이 원팀(One-Team)이 돼 노력했던 덕분"이라며 "차별화 기술이 LG디스플레이와 경쟁사의 격차를 수성할 해자(垓子)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