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게임은 화면 속에서 끝나는 콘텐츠'로 여겨졌지만, 이 공식이 빠르게 깨지고 있습니다.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자사 인기 IP(지식재산권)를 오프라인 공간으로 끌어내며 사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단순 굿즈 판매나 팝업스토어 수준을 넘어 테마파크, 복합문화공간, 대형 전시 등 체험형 콘텐츠로 확장되면서, 게임 산업이 '현실 공간'까지 영향력을 넓히고 있습니다.
◇ 단순 팝업 넘어 '상설 거점' 구축…체험형 플랫폼으로 확장
3일 업계에 따르면 넥슨, 크래프톤, 데브시스터즈 등 주요 게임사들은 최근 1~2년 사이 오프라인 IP 확장 전략을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게임 업데이트나 이벤트 중심으로 이용자를 붙잡았다면, 이제는 '현실에서 IP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주요 게임사들은 연간 수십 건의 오프라인 행사(IP별 약 10~16개)를 병행하며 접점을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넥슨의 '메이플스토리'입니다. 넥슨은 2026년 3월부터 서울 잠실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약 600평 규모의 '메이플 아일랜드' 테마존을 조성하며, 게임 속 세계를 놀이공간으로 구현했습니다. 어트랙션과 식음(F&B), 굿즈까지 결합된 이 공간은 단순 이벤트가 아니라 상설형 IP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해에는 강남에 '메이플 아지트' 콘셉트 PC방을 선보였고, 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 내 '카페 메이플스토리'는 개장 한 달 만에 방문객 2만2000명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넥슨은 이 같은 IP 확장을 기반으로 지난해 연매출 4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국내 게임사 1위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크래프톤은 한발 더 나아가 도시형 복합문화공간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지난해 7월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펍지 성수(PUBG SEONGSU)'는 PC방과 카페, 굿즈숍, 체험형 플레이 공간을 결합한 형태로, 게임을 '생활 콘텐츠'로 확장한 대표 사례입니다. 단순한 게임 플레이 공간을 넘어 커뮤니티와 브랜드 경험을 동시에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설계됐습니다. 이러한 IP 확장 전략과 글로벌 서비스 성과를 바탕으로 크래프톤은 지난해 매출 3조3266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데브시스터즈 역시 '쿠키런' IP를 앞세워 오프라인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진행 중인 대형 전시 '쿠키런 바다모험전'을 비롯해 팬 페스티벌과 팝업 이벤트를 확대하며, 게임을 문화 콘텐츠로 전환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회사는 '쿠키런'을 30~50년 지속 가능한 장수 IP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단순 게임을 넘어 브랜드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마케팅 트렌드를 넘어 산업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습니다. 가장 큰 배경은 시장 성장 둔화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백서에 따르면 국내 게임 이용률은 2022년 74.4%에서 2025년 50.2%까지 급락했습니다. 불과 3년 만에 24.2%포인트가 감소한 것으로, 팬데믹 특수가 종료된 이후 라이트 이용자가 대거 이탈한 결과입니다. 실제로 게임을 하지 않는 이유로 '시간 부족(44%)', '흥미 감소(36%)'가 상위 요인으로 꼽히며 이용 기반 자체가 축소되고 있습니다.
이용자 감소는 곧바로 수익 구조의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게임 산업은 신작 의존도가 높아 한 작품의 흥행 여부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크게 나타나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확률형 아이템 규제 강화까지 겹치면서 기존 과금 모델의 지속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프라인 IP 확장은 비교적 안정적인 반복 매출원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최근 오프라인 관련 매출 비중이 두 자릿수 이상 증가하며, 일부 기업에서는 전체 매출의 10% 내외까지 확대되는 초기 흐름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테마존, 전시, 굿즈, 식음 사업 등은 초기 투자 이후 지속적인 소비가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특히 오프라인 경험은 게임 이용 시간 감소를 보완하는 동시에 브랜드 충성도를 높여 다시 게임으로 유입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놀이공원이나 전시 공간에서 IP를 경험한 이용자가 게임에 재접속하거나 신규 유저로 유입되는 사례도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글로벌서 검증된 수익 방정식…'브랜드 수명' 늘리는 장기 투자
이 전략은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검증된 모델입니다. 닌텐도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협력해 '슈퍼 닌텐도 월드'를 조성하며 테마파크 산업의 판도를 바꿨습니다. 2025년 미국 올랜도 '에픽 유니버스' 개장 이후 유니버설 테마파크 사업은 분기 매출 29억달러를 기록하며 IP 기반 오프라인 사업의 수익성을 입증했습니다. 포켓몬 컴퍼니 역시 오프라인 리테일과 체험 공간을 결합해 2025년 기준 매출 4110억엔(약 3조7000억원)을 기록하며 게임 IP의 장기 사업화 모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내 게임사들의 움직임은 이 같은 글로벌 흐름을 뒤따르는 동시에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더 이상 게임 하나로 수익을 내는 구조가 아니라 IP 자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연결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의 전환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게임은 IP를 확장하기 위한 출발점이자 여러 콘텐츠를 연결하는 허브 역할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과제도 남아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한국 게임사들이 오프라인 IP 사업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굿즈나 전시 사업에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한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며, 대규모 상설 공간의 경우 투자 대비 수익 회수 기간이 길다는 부담도 존재합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게임을 잘 만드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었지만 지금은 IP를 얼마나 오래 살아남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로 바뀌고 있다"며 "오프라인 확장은 단기 수익보다는 브랜드 수명을 늘리는 투자에 가깝고 향후 2~3년 뒤 성과 격차가 본격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