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공언한 '테라팹(TeraFab)' 프로젝트를 두고 반도체 업계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기술적 실현 가능성보다, 이 선언이 글로벌 공급망에 미칠 파장과 '권력 이동'의 신호탄이라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로이터연합뉴스

반도체 업계에서는 2나노 공정 내재화와 관련해 "공정 구현 자체보다 양산 수율 확보가 본질"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는 회로 선폭을 2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까지 줄인 초미세 공정으로, 성능과 전력 효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차세대 기술입니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2나노 이하 첨단 공정은 단순히 설비만 들여온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수년간 축적된 공정 데이터와 정밀한 장비 제어 능력이 결합돼야 하는 영역"이라며 "TSMC와 삼성전자조차 안정적인 수율 확보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테라팹이 단기간 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을 대체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실제 생산 계획이라기보다 '전략적 협상 카드'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존 페디 리서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테슬라가 자체 생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기존 파운드리 업체에 대한 가격 및 물량 협상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설계 내재화를 통해 주도권을 확보해 온 흐름을 넘어, 이제는 제조 영역까지 수직 계열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산업 내 권력 균형을 흔들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보다 복합적인 변화가 예상됩니다. 업계에서는 테라팹이 고대역폭메모리(HBM)까지 내재화할 가능성은 낮게 보면서도, '스펙 주도권' 이동을 핵심 변수로 지목합니다.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반도체 분석에 따르면, 지금까지는 메모리 제조사가 기술 표준을 주도해왔으나 향후에는 테슬라처럼 자사 AI 시스템에 최적화된 '커스텀 메모리'를 요구하는 대형 고객사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특히 범용 제품 중심의 한국 메모리 업체들의 경우, 고객 맞춤형 요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협상 지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 리스크 요인으로 거론됩니다.

테라팹의 현실성을 가르는 가장 큰 제약 요인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확보 문제입니다. 첨단 공정에 필수적인 이 장비는 ASML이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으며, 이미 인텔, TSMC, 삼성전자 등이 향후 물량을 선점한 상태입니다. 반도체장비 업계 관계자는 "장비 확보가 되지 않으면 공정 기술이 있더라도 실제 양산은 불가능하다"며 "테슬라가 대규모 장비 확보 경쟁에 뛰어들 경우 기존 기업들의 설비 투자 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테라팹을 기존 반도체 산업의 수익성 논리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테슬라와 스페이스X, xAI를 아우르는 머스크의 사업 구조를 고려할 때,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장기적인 '연산 인프라 확보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입니다. 스타링크 위성망부터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로봇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인 연산 수요를 기존 반도체 공급망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는 평가입니다.

결국 테라팹의 핵심은 머스크가 실제로 공장을 완성하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그의 파격적인 요구와 속도에 기존 반도체 생태계가 얼마나 대응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급망 주도권이 어디로 이동하느냐가 본질이라는 분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