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이 반도체에 이어 디스플레이 산업 공급망 재편을 위한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양국은 최대 130억달러(약 19조원) 규모로 미국 내 디스플레이 생산 거점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제조 기반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2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재팬디스플레이(JDI)는 일본 정부, 미국 정부와 협력해 미국 내 최첨단 패널 공장 건설을 논의 중이다. 이 계획이 알려지자 JDI 주가는 하루 만에 약 80% 급등했다. 시장은 이를 미국의 반도체에서 디스플레이로 이어지는 제조 기반 확보 전략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패널 시장은 현재 한국과 중국이 양분하고 있다. 프리미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주도하며, 액정표시장치(LCD)와 중저가 OLED는 비오이(BOE) 등 중국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점유율을 확대해 왔다. 반면 일본은 과거 LCD 선도국이었으나 파나소닉, 소니 등이 채산성 악화로 철수하며 영향력이 크게 축소됐다.
이번 구상은 일본 디스플레이 산업의 재건 시도로 평가되지만, 과거 정부 주도 투자 실패 사례가 신중론을 부른다. 1999년 히타치와 NEC의 메모리 통합으로 출범한 엘피다는 한국 기업에 밀려 2012년 파산했고, 소니·히타치·도시바 LCD 부문을 합쳐 출범한 JDI 역시 OLED 전환 지연으로 만성 적자에 허덕여 왔다.
경제성 또한 핵심 변수다. 디스플레이는 가격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산업으로, 인건비와 운영비가 높은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경쟁력 약화 우려가 크다. 실제 대만 폭스콘은 과거 미국 위스콘신 LCD 공장 건설 계획을 대대적으로 발표했으나, 수익성 문제로 초기 구상과 달리 사업이 대폭 축소·전환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프로젝트가 대규모 양산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상징적 메시지에 그칠지는 구체적인 투자 집행과 착공 일정 등이 나와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