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사들이 최근 이사회 구조 재편을 추진하고 이달 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임 사외이사 선임에 나선다. 넥슨, 크래프톤, 엔씨소프트, 시프트업 등은 글로벌 사업 확장 전략의 일환으로 올해 투자와 인수합병(M&A), 콘텐츠를 강화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를 이사회에 영입하고 있다.
9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넥슨은 오는 25일 열리는 주총에서 일반이사 6명과 감사위원회 위원 3명을 선임할 예정이다.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의 투자와 재무 담당자들이 이사회에 새로 합류하고,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신작을 성공시킨 개발 자회사의 대표가 신임 회장으로 임명되는 등 투자와 해외 사업 확대에 중점을 둔 이사회 구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넥슨은 지난달 회장직을 신설하고 흥행작 '아크 레이더스' 개발사인 엠바크 스튜디오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패트릭 쇠더룬드를 초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쇠더룬드 회장은 미국 대형 게임사 일렉트로닉 아츠(EA)에서 총괄 부사장을 지냈고, 인기 게임 '배틀필드' 개발에도 참여한 업계 베테랑으로 꼽힌다. 그는 넥슨의 장기 전략, 크리에이티브 방향, 글로벌 게임 개발 방식 등을 총괄하게 된다. 이정헌 넥슨 대표는 쇠더룬드 회장이 설정한 전략적 방향의 실행을 맡기로 했다.
이번 인사는 콘솔 게임을 키워 북미·유럽 등 서구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는 넥슨의 전략과도 궤를 함께한다. 쇠더룬드 회장이 개발을 주도한 '아크 레이더스'는 지난해 10월 출시 이후 누적 판매량 1400만장을 돌파하는 성과를 냈다. 넥슨 입장에서는 그동안 약점이었던 콘솔 분야와 북미·유럽 시장에서 이례적으로 히트작이 나온 것이다. 게임 업계에서는 넥슨이 기존에 없던 회장직을 새로 만들면서까지 쇠더룬드 회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을 두고 서구권 게이머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그를 앞세워 북미·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울러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에 NXC 최고투자책임자 등을 배치해 투자 역량 강화에도 나선다. 알렉산더 이오실레비치 NXC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감사위원회 위원에서 일반 이사로 보직을 변경하고, 조한민 NXC 투자부문장은 감사위원회에 새로 합류한다. 이오실레비치 CIO가 이사회의 일원으로 전략, 투자 등 주요 안건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되면서 업계에서는 넥슨이 이사회 차원에서 신사업 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지난해 말 기준 보유하고 있는 8000억엔(약 7조5100억원)의 현금 재원을 기반으로 M&A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크래프톤도 이달 24일 개최하는 주총에서 김민영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APAC) 지역 콘텐츠 부문 부사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염동훈 메가존클라우드 대표를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으로 선임하기로 했다. 크래프톤은 올해 대표작인 '배틀그라운드'를 비롯한 인기 게임을 프랜차이즈 지식재산권(IP)으로 육성하는 전략을 추진 중인데, 그 일환으로 넷플릭스 등에서 콘텐츠 투자와 제작, 사업 확장에 직접 참여한 김민영 후보자를 이사회에 이사로 임명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크래프톤은 이 같은 안건이 포함된 주주총회 소집 공고 공시에서 김민영 후보자가 "해외 시장에서의 콘텐츠 전략 수립 경험과 신흥 시장 개척에 대한 전문성, 주요 글로벌 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크래프톤의 콘텐츠 및 IP 확장 전략에 실무적 관점을 제공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염동훈 후보자의 경우 구글과 아마존 등 글로벌 테크 기업에서 사업 확장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경영 전문가라는 점을 들어 "크래프톤의 중장기 성장 전략과 기술 기반 사업 방향에 대해 균형 잡힌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봤다. 크래프톤은 최근 신설한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직에 이강욱 크래프톤 AI본부장을 선임하고, 게임 AI 연구개발 체계를 고도화하는 동시에 원천 기술 기반의 중장기 사업 전략에 힘을 싣겠다고 발표했다. 중장기 신사업 분야로는 피지컬 AI와 로보틱스를 지목하고, 관련 연구에 주력하는 '루도 로보틱스'도 설립했다.
엔씨소프트는 이달 26일 주총에서 지난 1997년 창립한 이후 29년 만에 사명을 '엔씨(NC)'로 변경한다. 이와 함께 오승훈 인싸이트그룹 대표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오승훈 후보자는 머서 코리아를 포함한 글로벌 인적자원(HR) 컨설팅 기업을 거친 인사와 조직 분야의 전문가다. 엔씨는 올해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슈터·서브컬처 등 새로운 장르, 모바일 캐주얼 게임을 3대 성장 축으로 삼고 대대적인 해외 시장 공략을 예고한 만큼, 엔씨라는 새 사명 아래 통합된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해 글로벌 시장 확장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엔씨 측은 "오승훈 후보자는 구성원의 성장과 몰입을 위한 조직 설계, 인사 전략, 조직 문화, 성과 관리 및 보상, 리더십 육성 등에 풍부한 실무 경험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프트업은 이달 주총에서 밍 리우 텐센트 인터랙티브엔터테인먼트(IEG) 글로벌 CEO를 기타비상무이사 후보로 선임할 계획이다. 밍 리우 CEO는 텐센트의 글로벌 퍼브리싱(유통·배급) 브랜드 '레벨 인피니트'의 설립을 주도했고, 시프트업의 대표작인 '승리의 여신: 니케'의 유통을 맡았다. 시프트업의 차기작인 '프로젝트 스피릿'도 텐센트가 퍼블리싱을 담당할 예정이라 밍 리우 CEO의 시프트업 이사회 합류는 텐센트와의 전략적 협업 강화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말 기준 텐센트의 시프트업 보유 지분은 34.48%로 최대주주인 김형태 대표 측(38.89%)에 이어 2대 주주다.